대 평원의 나라 몽골 땅에서1
꺼지지 않는 불
김선화
수흐바타르와의 조우
우리나라와 정서나 문화가 비슷한 민족이라 하여 평소 친근하게 여겨오던 나라 몽골기행에 나섰다. 관광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몇몇 문인과 화가들이 팀을 이뤄, 현지 대학교 관광학과 교수로 가있는 H의 안내를 받기로 한 것이다. 6월 중순인데 그곳의 기후는 초가을 날씨라 했다. 햇살이 제법 따갑다.
'칭기즈칸공항’에 발을 딛기 이전부터 푸른 초원을 떠올리며 몽골 땅을 얼마나 동경했던가. 몽골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 여겨 그쪽 말로 ‘솔롱고스! 솔롱고스!’하며 우의를 표했다고 한다. 허나 나는 그들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막연한 그리움뿐이었다.
공항에서 처음 가 닿은 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이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을 의미한다고 한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의복이나 생활상이 우리나라도시의 60년대 후반 같은 모습이다. 교차점에서 자동차들이 엉킨다. 그래도 크게 마찰 없이 각기 방향을 잡아나간다. 특이하게도 교통신호가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서 전화기를 들고 이동하는 여성들이다. 우리나라처럼 공중전화부스가 따로 있질 않아, 사람이 직접 수수료를 받고 전화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크게 발달되지 않은 나라에서 저러한 방법으로라도 다급한 일이 해결된다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은 몽골의 국부(國父)격인 수흐바타르 장군의 동상을 만나러 나섰다. 몽골인민혁명당을 조직한 수흐바타르는 몽골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몽골의 영웅으로, 1921년 당시 소련과 연합하여 중공군을 몰아내고 몽골 독립을 선포한 인물이다. 그의 동상이 서 있는 울란바토르의 중심부를 역사적인 ‘수흐바타르 광장’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도 포즈를 취하며 제법 그럴싸한 기사도흉내를 냈다. 용맹무쌍한 기사의 야심이야 어찌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 먼 곳까지 패기 넘치는 사람을 만나러 왔으니 그의 강한 기운 일부라도 얻어내야 한다는 묘한 어기장이 넌지시 고개를 들었다.
테무진과 칭기즈칸
울란바토르에서 ‘자이승기념탑’을 향한 길 산언덕에 허연 대형그림이 나타난다.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칸 상이다. 아명 ‘테무진’이라 불리던 칭기즈칸은 오논 강변에 있는 몽고민족의 유목민부락에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어렸을 때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되어 부족이 흩어져 살았는데, 빈곤 속에서 성장한 그는 차츰 세력을 키워 1189년경 몽골 씨족연합의 맹주(盟主)에 추대되어 칭기즈칸이란 칭호를 받게 된다. 그 후 몽골제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부족을 통일하여 하나의 통일국가인 몽골제국을 설립했다. 1213년에 금을 함락시킨 칭기스칸은 1219년 총 60만 대군을 동원하여 중앙아시아 원정을 시작, 동으로는 만주, 서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인도, 북으로는 시베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의 주인으로 군림했다.
그 대형그림 앞에서 가슴에 서늘한 기운이 돈다. 그리고 허탈감마저 몰려온다. 한 나라의 역사 속 인물은 그의 육신이 떠나간 지 오래여도 저렇듯 어엿한데, 범상한 일상으로 생을 메워가는 사람은 이 다음 어느 귀퉁이에 이름이 새겨질까.
쓸데없는 망상을 지우며 자이승탑으로 뻗은 계단을 오른다. 치솟은 탑의 높이로 기상이 돋보인다. 탑신 광장엔 ‘꺼지지 않는 불’이 담겨있던 화로가 둥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불을 피우고 축제를 벌였다는 승전상징물이다. 거침없이 질주했을 무사들의 행로가 어림짐작된다.
불씨를 보유하는 것이 어디 눈앞의 사물뿐이랴. 우상시할만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것에 배인 의미를 기리는 것이면 그것이 곧 불씨이겠지. 몽골은 그러한 조합이 비교적 잘 된 나라라는 인상이 짙다.
그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본다. 도심을 적시며 흐르는 만인의 젖줄 ‘톨강’이 유유하다. 사철 마르지 않는 강이라니 더욱 넉넉해 보인다. 버드나무가지 낭창낭창한 강가도 정겨움으로 와 닿는다. 강물에 미역 감는 아이들 모습도 군데군데 보인다.
다시 버스에 올라 방향을 새로 잡는다. 까만 철길이 설핏 스친다. 중국의 베이징 등을 거쳐 울란바토르를 지나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던 교통망이란다. 그러던 곳이 지금은 일부의 노선만이 드러나 있다. 문득 우리의 남한과 북한을 잇던 경의선철도생각이 난다. 이미 끊겨 더 나아갈 수 없는 길…. 그 길에 설움이 깃들어 있어도 더러는 세월 속에서 그리워지는 노선. 어느 때는 멈춰있는 시점에서 길고 긴 길의 여운을 의식할 때가 있다.
내 안의 야생을 만나다
다음 목적지는 우리나라의 설악산에 버금간다는 국립공원이다. 울란바토르 북동쪽 90km에 위치한 ‘테를지’. 거리를 재는 단위로 ‘리’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일고 있지만, 나도 기성세대여서 그런지 이럴 땐 ‘리’로 환산해야 인식이 빠르다. 4km를 10리라 할 때 테를지는 수도에서 200리가 넘는 길이다. 몽골인의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다는데 이곳은 우리일행이 하룻밤 묵을 캠프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차가 나아갈수록 초원지대에가 열린다. 광활하다. 소, 말, 양이 보이고 게르도 드물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생물이 살지 않을 것 같던 벌건 산, 그 척박한 땅에서 야생초가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입춘이 지난 2,3월의 땅기운이다. 한낮의 햇살은 따가운데 흙에서 자라는 풀들은 바닥을 간신히 면한 처지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밀보리가 슬며시 고개 드는 우리나라의 이른 봄날이 이러하지 싶다.
연중 7개월이 겨울인 나라가 몽골이란다. 대부분의 국민이 산천 좋은 곳에 게르를 짓고 주거 집단형식으로 살아가며 감정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절재를 요한다고. 원주민들이 목축을 업으로 삼아 게르에서 살아간다면, 요즘엔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경개 좋은 곳에 게르를 지어 외국인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가라오케까지 준비되어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인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도 그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소식이다. 형제의 나라라 하며 관심을 보이던 이전과는 달리, 우리나라 일부 관광객들의 일탈된 행위로 인하여 아름다운 이미지가 더러 실추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씁쓰레하다. 이는 우리들 스스로가 더욱 관광예의를 지켜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나아갈수록 대자연의 평원은 이어지고 하늘이 크게 열린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아놓고 보던 진초록 초원에 뭉게구름도 떠있다. 가슴의 응축된 것들이 열린다. 안에 고였던 야생이 열린다. 내가 지금 평원을 노니는 양이 된다. 또 말이 되고 소가 되어 들판을 이리저리 뛴다. 내 몸뚱이 어느 구석에 이러한 야생이 들어차 있었던 것일까.
가는 길 중간 중간 영기(靈氣) 감돌법한 곳에는 청, 홍, 황의 깃발을 세운 돌탑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 격으로 이쪽에서는 ‘오보’라 하며 우상시한다고 한다. 특히 아기 점지해달라고 빌면 효험이 있다는 안내자의 말에 따라, 일행 중에서도 몇 몇 새댁작가들은 염원을 담아 탑을 돌았다. 나도 탑을 돌며 내 안의 간절한 기원을 올렸다. 어느 때는 버스도 지나다가 세 바퀴씩 돌고 간다고 했다. 국경 너머에서 만나는 원초적 상징물에 우리들 마음은 너나없이 동화되었다.
이어 계속 나아가자 중생대의 화강암지대가 나타난다. 산의 모습이 그렇다. 나무가 흔한 산이 아니라 온통 바위산이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와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게르촌은 그러한 바위산을 울타리 삼아 저만치 아래쪽에 군데군데 형성되어 있다. 그 나머지의 공간은 가축의 것이다. 평원을 누비는 소, 말, 양, 낙타가 주인인 땅에서 내가 하룻밤 나그네로 묵을 참이다. (2009. 1.)
2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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