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치열한 수필쓰기를 통한 인생 탐구/ 정목일

이예경 2009. 8. 5. 21:41

<제27회 한국수필상 수상평>


  치열한 수필쓰기를 통한 인생 탐구


                                                                        정목일




  김선화의 『포옹』은 「씨」, 「포옹」등 60여 편을 수록했다. 이번 수필집은 『둥지 밖의 새』(1999) 『눈으로 보는 소리』(2002) 『소낙비』(2005)에 이은 네 번째 수필집이다. 3년 주기로 수필집을 낸 경력으로 보면, 수필문학에의 집중력과 열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수필집 『소낙비』는 5매 수필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이는 하나의 시도이기 전에 치열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선화 수필가의 근래 작품을 살펴보면 주제나 소재가 여느 여류 수필가의 보편적인 영역인 일상적 신변잡사에서 벗어나 발견, 탐구, 추구의 세계로 관점과 시각을 확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개인사적인 기록 차원을 초월하여 작가의 안목과 인생 관점에서 찾아낸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추구해내려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본격 수필가로서의 탐구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개인사의 정리나 신변잡사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면, 이는 작가 만족의 글쓰기에 불과하며, 독자를 위한 글쓰기에서 비켜난 셈이 된다. 독자의 삶에 도움을 주려면 개인의 체험에 대한 기록에서 한 차원 높은 인생에 대한 의미 부여나 가치 창출이 있어야 한다.


  먼저 주제나 소재에서부터 독자성, 개성, 전문성, 흥미성을 지녀서 차별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선화 수필가의 경우엔 가정이나 개인사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의 구축과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탐구정신을 보여준다.




  남녀 한 쌍이 꼭 부둥켜안고 땅에 묻혀 지내다가 세상에 나왔다. 이탈리아북부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뼈와 뼈로 얽혀있는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발굴 팀(엘레나 멘토니)은 5천 년~6천 년 전의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소식을 우연히 인터넷 창에서 접하고, 한참동안이나 멍한 채로 다음 할 일을 잊었다.


  우선 두상을 살펴보면 뒤통수의 곡선까지가 또렷하다. 암만 봐도 뒤통수의 돌출이 적고, 턱선이 약간 부드러운 쪽이 여성인 듯싶다. 서로 눈과 눈의 높이가 같아 금세라도 불꽃 튀는 교감이 이뤄질 태세이다.


  어깨와 어깨를 휘감은 팔과, 허벅지와 허벅지께로 포개어져있는 건강한 다리뼈.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어느 결에 ‘유골감정사’가 되어 이름 모를 이들의 옛 삶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아마도 지극히 젊고 뜨거운 연인이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상기된 모습으로 맘속의 파동을 소곤거렸으리라. 그러다가는 정애에 겨워 와락 안기도 하였겠지. 그런데 그날은 어떠한 사정으로 둘이 함께 숨져가야만 했을까.


                                                           「포옹」의 일부 




  「포옹」은 작자의 직접적인 체험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소재를 우연히 취하여, 작자만의 관점과 의미 부여로 ‘5천년~8천년의 포옹’을 그려냈다. 주검의 흔적으로 뼈만 엉켜 있는 남녀 한 쌍의 유골 출토를 보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부활을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작자의 능력이다. 


 


  가끔씩 탈춤을 추고 싶다. 탈에 가려진 인물은 저절로 흥이 올라 삶의 굴레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것 같다.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외형을 빌려, 곱사등이도 되고 들짐승도 되어 기진맥진하도록 놀아보고 싶다.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겯고 헤벌쭉이 입을 벌려 바보흉내를 내거나 성난 듯 포효도 하면서 관객들 앞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한바탕 흥 오른 마당놀이를 만났을 때, 내 이러한 욕구가 주체할 수 없는 추임새를 넣게 한다. 그래 봤자 ‘얼쑤’ 하고 힘 좋게 내지르지도 못하고 슬며시 지폐를 꺼내 맘에 드는 놀이꾼 앞에 내놓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러한 몸짓으로나마 그 누구보다 걸지게 놀이패의 무리가 되어 놀아본다.


                                                                 「탈」의 일부




  「탈」은 탈춤을 보고서 쓴 글이다. ‘탈’이란 가면이란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질병’,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균형이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 파장으로 탈이나 질병이 생기고 액을 부른다. 탈이 생기면 굿을 하고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는 등 민간신앙을 이용함으로써 평정을 되찾으려 하였다.


  김선화 수필가는 ‘탈’을 통해 자신의 처한 마음과 질병으로부터 비롯된 억압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를 표출하고 있다.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고 싶은 열망을 보여준다. 탈을 쓰고 전연 다른 사람이 되어 마음대로 놀이를 펼치며 신명을 내거나 포효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김선화 수필가의 주제는 삶 속의 영원 찾기이며 행복 추구이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그는 삶에 대한 최선과 열정을 수필에 불어넣는다. 삶을 통한 의미, 가치, 영원을 찾아보려는 의식이 철저하며, 이러한 삶의 정신과 태도가 수필에의 열정으로 일관되고 있다. 그의 수필은 뼈에 사무친 애절함이 있고, 민족 정서와 닿아 따스함과 푸근함을 준다.


  소재 찾기를 위한 여행과 현장 답사 등 노력이 돋보이며. 이런 전력투구를 통해 작품이 빛을 발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이에 대한 미학, 존재에 대한 의미 찾기, 삶을 통한 깨달음, 순간과 영원에 대한 의미 부여가 김선화 수필의 골격이다.


  김선화 수필가의 문장은 간결하고 유려하다. 이미 5매 수필집 『소낙비』를 낸 바 있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파고드는 문장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 수필의 분량이 짧아지고 있다. 오늘날 수필쓰기의 방향성은 독자가 원하는 대로 ‘짧게, 쉽게, 참신하게, 입체적이게’ 쓰는 게 바람직하다. 김선화 수필가는 독자들의 구미와 감각을 잘 맞춰내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어느 작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체험의 확대와 전문 세계의 확보를 통해서 작품에 깊이와 무게를 불어 넣는 일이라 할 것이다. 형식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철학과 사상과 인격이라는 내용이 부합되지 못한다면 수필의 경지를 높일 수 없다.  


  김선화 수필가는 데뷔이후 4권의 수필집을 상재하면서 보여준 집중력과 열정, 투철한 작가의식과 탐구, 아울러 실험성을 보여준 수필가로 그 잠재력을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금년도 한국수필상 수상자의 반열에 올라도 손색이 없다는 확신으로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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