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성악 발성법

세계적인 테너

이예경 2009. 8. 17. 17:36

타마뇨.francescoTamagno(1850∼1905)                 

                    
19세기말에활약하여 벨 간토의 전통을 전한 최고의 테너 가수로 알려져
있으며 뛰언난 목소리로 성량은 콘서트 홀의 유리창과
샨데리아를 진동시켰다는 전설을 남기고 있다. 토리노에서 태어나
도니젯티의 『폴리우토』로 데뷔하였다. 다음  해 팔레르모에
가극장의 합장단원을 거져 1873년에 서 『가면루도회』의 리카르도를 불러 」
 럼펫 같은 목소리 라는 평을 들었다.
  877년에 라 스칼라 광장에서 퐁키엘리 의 『낭비자』의 초
 연으로 데뷔 이어 베르디 의 <오델로>의 초연에서 그 타이틀
 롤을 불러 절찬을 받았다 1891년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초빙을 받았으며 1902년에 은되하였다. 그는 오페라사상
 에 남는 대  테너의 계보상에 뚜렷이 남는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카루소 Enrlco Caruso(1078∼1921)
 이탈리아 벨 간토
 의 전형이라고도 하며 20세기 초 엽최대 테너 가수로
 알려져 있다. 밀라노에서 태어나 1894년에 나폴리의 테아트로
 누오보 에서 보레르리의 『아미코 프란체스로』로 데뷔 하
 였으며 그의 뛰어난 로 소리로    순식간에 전이탈리아의 인기
 를 차지하였다.
 처음에는 리리코  테너였으나 1902년에 멜바와
 몬데카를로에서 『리골레토』를 부근 뒤에더욱 이름을 떨쳤으며
 남성적인 박력을 만층 더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1903년에
 는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하여 「그레이트 카루소」로서 메트
 로폴리탄의 황금시 대를 장식하였다.  40곡 6백회의 공연
 을 기록하였다. 1920년 복막염으로 나폴리로 돌아와 고향
 에서 서거하였으나 그 역사적인 목소리와 명연은 그
 당시 발족한 레코드에 기록되어 영원히  그 예술을 전한다.
 

  슬레작 Leo Sletak(1873∼1946)
체코슬로바키아의
테너 가수로서 파리에서 데 레스케에게 사사하여 1896년에
『로엔그린』의 독창자로 발탁되어  데뷔하였다. 베를린, 비인
등지에서 활약한 후 1909∼1913년까지 메트로폴리탄 가극
장에서 출연하였다 성량이 크다는 것과 유머에 찬 가창은
사람들의 애호를 받아 오페라 외에 가곡의 녹음 등이 많다.

  스키파 Tito SchPa(1008∼1965)  
벨 칸토치 진수
를 전하는 테너 가수로 질리와 함께 주목을  받는 스키
파는 이탈리아 반도의 돌출부 끝인 「바로크의 피렌체」라
불리는 레쩨 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에서 공부를 하며 에밀리오 피핀리에게 사사,
1911년엔 베르첼리에서의 『춘휘』의 알프레드로 데뷔. 1903년
대에는 그 전성기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계 각국의 가극
장에 초빙 되 었다
스키파의 목소리는 결코 큰 것은 아니나 전형적인 벨 칸
토의 발성법과 뛰어난 기교가 알려져 있으며.후년에는 미
국에서 『쿰파르시타』 등 포플러를 불러 갈채를 받기도 하
였다.은퇴후에는 많은 뛰어난 문하생을 배출하여  후진
양성후진양성 에 힘썼다 
 
 질리 Heniamino Gigli(1890∼1957)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대테너 가수로서, 카루소에 이어 20세기
전반에 활약하였으며 레코드의 전기 취입을 재용한 고 선후가 최전
성기였던만큼 빼어난 레코드가 많다. 북이탈리아의 레카나
티에서 태어나 그곳의 스콜라 ·칸토룸에서 배운 뒤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당시 유명하였던 로자티에게 사
사하였다
  1914년 파르마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라죠콘다』로 데뷔하였다. 토스카니니의 인정을 받아 라 스칼라
극장의 『메피스토펠레』에 등장하여 절찬을 받았다. 1920년
에는 같은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데뷔. 카루소
이후로 벨 칸초의 전통을 계승하는 대 테너 가수로 주
목되었다. 유려한 벨 칸토 캉법과 , 지성이 풍부하고 힘찬
가창은 듣는 이를 매혹케 한다.

  비올링 Jussi Bjorling(1907∼1960)
스웨덴 테너가수이며
어렸을 때 부친과 두 형제로 보를링필 남성 4중
창단을 조직하여 순회연주하였다. 자란 뒤로는 왕립 오페
라학교에서 공부한 후 1930년에 스톡흘름에서
돈 옥타비오로 데뷔. 1938년 이후로는 메트로볼리탄을
중심으로 활약하였으뎌 그 투명한 목소리와 마음이 따스해지는 가창은
제 1급의 가수로 절찬받았다

  피어스 Jan Pierce(1908∼? )
본명은 야콥 팔레므스라순수한 미국 태생의 테너가수
뉴욕에서 태어나 처음에 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하였으나                         
무심코부른노래로스카우트되어 1933∼1939년 사이에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
출연. 그 동안 오페라의 공부에 힘쓰고는 1939년에
신시내티에서 『리골레토』의 공작 역을 맡아 데뷔하였다.
1941년 이후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수석 테너로
활약하였으나 토스카니니의 추친을 받아 그가 지휘하는 NBC의
오페라 방송에서 『보엠』,『피델리오』, 『춘희』, 『가면무도회』
등을 불렀으며 이 방송은 동시에 레코드화되기도 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극적 박력에 가득차 긴장도 가 높은 성질
 인만큼 설득력이 있다.  

  피어즈 Peter Pears(1910∼ ?)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배운 뒤 에레나 게르하르트에게 사사, 합창단의 멤버로 활약하였다. 1942년에는 런던치 스트랜드 극장에서 『호프만 이야기』에서 독장자로 데뷔. 그 뒤 브리튼과 협력하여  피터그라임스』(1945)를 비롯하여 딴은 초연을 가졌으며, 그의 지성이 넘쳐 흐르는 가창은 가곡의 분야에도 많주 성과를  보이고 있다.

  탈랴비니 Ferrucrio Tagliavini(1913∼ )

테너 가수이며. 전후를 대표하는 리리코 레제로 테너이다. 그 목소 리의 아름다움과 함께 경묘한 가창과 정서 가 풍부한 표현은 절찬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건축 가가 되려고 하였으나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1938년에 기린체의  벨 칸토 콩쿠르에 나아가제1위를 차지한 뒤부터 가수가 되기를 결심하였다.
1939년에 피렌체에서 『보엠』의 로도르포 역을맡아 데뷔.
고후 메트로폴리탄 가극장.라 스칼라 극장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예서 명성을 떨피고 있다.영화 물망초에도 출연하여 기억에 남아있다.
 

 
  터커 Richard Tucker(1914∼ )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한 미국의 대표적 테너 가수이며 「브루클린 태생의 카루소」라는애칭을듣기도한다. 뉴윽에서 배운 뒤 1945년 『죠오콘다』의 엔쵸역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데뷔. 메트로폴리탄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오페라에서 수석 테너가수로 주목 활약.
  1958넌에 런던의 코빈트 가든 창립 가극장에 초빙되어『토스카』의 카바라도시을를 불렀으며, 그 이전인 1947년에는칼라스가 이탈리아에 데뷔한 베로나의 아레나에서의『지오콘다』에서 엔쵸역을 부르기도 하였다.
  토스카니니의 인정을 받아, 1949년에 토스카니니가 지인하는 NBC 방송에서 『아이다』의 라다메스를 불렀고 동시에 레코드화 되었다.


  델 모나코 Mario Del Monaco(1915∼ 1982)

「황금의 트럼펫」이라는 형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힘찬 목소리를 타고나, 리릭 드라마틱 테너 가수로서 1950∼1960넌대를대표하는 가수의 한 사람.
  피렌체에서 태어나 페사로 미술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배우는 한편  롯시니 음악원에서는 성악을 배워 졸업한 뒤로는 로마 가극장의 연구생이 되었다. 1939년에 페사로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릿두를 불렀으나. 정식으로는 1914년에 밀라노의 풋치니 극장에서 『나비부인』의 핑카튼을 불렀을 때가 정식 데뷔로 간주되고 있다.
  1943년에 전쟁으로 라 스칼라 극장이 파괴되어 코모에서상연을 계속하고 있을 때 『보엠』의 알프레드로 등장 그후세계 각지의 주요 가극장에서 활약하였다. 1963년에 자동차 사고로부상을 입어 그의 재기가 위태로왔으나 1967넌복귀하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봄 로마 가극장에서의 『에르나니』로 완전히 무대로재기, 젊었을 때 펫페 초레비치오에게
배운 외에 질리 등의 레코드를 갖고 스스로 독학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란짜 Mario Lanza(1921∼1959)
영화 「가극왕카루소」등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뉴욕에서 이탈리아계의 부친과 스페인계의 모친 사이에 태어나 소년시절을 필라델피아에서 보냈다. 오페라 팬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트럭 운전사로 있으면서 아이링 월리엄즈에게 배웠다.
어느 때 피아노를 커티스 음악학교로 운반했을 때 그 일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어찌나 훌륭했던지. 그것에 놀란 쿠세비츠키가1942년 탕글우드에서의 『비인의 명랑한 아낙네들』의 펜톤의 역으로 출연시켜 호평을 받았다.
그후 뉴우올리안즈의오페라에 출연도 하고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나 영화출연을위하여 비대해지는 것을 엄려한 영화사의 회망에 따라 식사를 감량한 것 등이 원인이  되어 38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무대 위에서 쓰러졌다.

  디 스테파노 Giuseppe Di Stefano(1931∼ )

델 모나코와 쌍벽을 이루는 테 너 가수이머 젊었을 때의 리리컬하고 경묘한 목소리는 뛰어났으며 레코드에 많은 녹음이 있다. 시칠리아의 카타냐에서  태어나 유명한 바리톤.몬테산토에게 사사하였다. 1946 렛쇼 에밀리아에서 마스네의 『마농」의 데 그리에 역으로 데뷔하였으며 그후 1948년에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불러 일약 인기를 모았다.초기는 카바라도시, 빌헬름 마이스터, 엘리노. 프릿츠,거기에 『진주잡이」의 나딜 등 경묘한 성질의 역을장기로 삼았으나 1953년경부터 무거운역할을 부르게되었다.

  
  코렐리 『franco Corelli (1921∼ )
베르곤찌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대테너가수이며 특히 풋치니의 작품에 뛰어난 재질을 보인다.
  앙코나에서 태어나 성가대 지휘자로 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미성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었다. 성년까지는 제도공으로 일하였으나 친구의 권유로 성악을 배우게 되어 1951년, 피렌체에서 있었던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 다음 해 스포레토에서 『카르멘」의 호세 역으로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로마 가극장, 밀라노의 라스칼라극 장에 초빙되는 등 빛나는 길을 걸었다.  초기는 그의 비브라토가   비난 받기도 하였으나 1960년경 발성의 트레이닝을 바꾸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 테너가 되었다.바리톤적인 폭넓은  음색,탄탄한중음힘있는 고음, 거기에 약성을  잘사용하는테크닉을 구사한다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을비롯하여    세계각지에서 활약했다.그의 음질은 강함과부드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TOSCA의/ 별은 빛나건만 / 의 절묘한 피아니시모와  감동적인 표현은  듣는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남는다                     
 
  콘야 Sandor Konya (1923∼ )
힝가리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갖는 테너 가수이며 1951년 비에레펠드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 역으로 데뷔. 1958년 이후「로엔그린』의 타이틀 롤로 바이로이트에 출연하였다. 1962년부터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은 정평이있다.

 
 베르곤찌 Carlo BergonBi (1924∼ )

코렐리와 함께 이탈리아 테너의 쌍벽을 이룸. 베르곤찌는
베르디의 고향인 파르마 지방 브세트에서 태어났다.
  파르마의 보이트 음악원 재학중에 제 2차 대전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하였으나 전후 다시 공부를 계속하여 1948년 레체에서
『세빌랴의 이발사』의 피 가로, 즉 바리톤으로 데뷔하였으나 뒤에 성질의 변화를 알고
  독학 후 1951년에 아드리아해에 면한 바리에서『앙드레아세니에」의타이틀 롤 역으로
테너로서 다시데뷔하였다 카라얀은「베르디의작품에서 베르곤지를 능가할 테너는
 없다」고 극언할 정도이며 그의 탁월한 목소리는 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할것이다.


  
  겟다 Nicolai Gedda (1925∼ )

스웨덴의 테너가수이 며 1952년 스톡홀름에서 데뷔. 1954넌에 파리나
에이크 스 안 프로방스에서 성공을 한 뒤부터 알려지게 되었다
 레퍼터리도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하여 그 높은
음악성과 예술성은 정평이있다. 1957년부터 메트로폴리탄
에선 바린, 잘츠부르크에선 리버만의 작품을 초연하였다.
 
 
 멜시오르<Melchior, Lauritz>(1890.3.20~1973.3.18)

덴마크 출신의 미국의 테너가수. 코펜하겐 출생. 처음에는 코펜하겐의 교회에서 보이소프라노로
노래를 불렀다. 그 후 성악을 공부하여 1913년 바리톤가수로서 왕립오폐라극장에서 데뷔하고,
18년 테너가수로 전향, 21년까지 그 극장에 전속되어 있었다. 25년 바이로이트음악제에서 《파르지팔》을 부르고, 이듬해 《탄호이저》로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에 데뷔하였다. 46년 미국에 귀화하여 바그너가수로 활약하다가 50년에 은퇴하였다. 20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헬덴(영웅역) 테너로 꼽힌다.
 
 
                          란짜<Lanza, Mario>(1921~1959)
미국의 테너가수. 본명은 A.A.코코차. 아버지는 이탈리아인(人), 어머니는 에스파냐인이다.
소년시절 레코드를 통해 카루소의 노래에 심취, 성악을 독학하고, 1942년 트럭운전사로 일하면서 인정받아
버크셔음악제에서 데뷔하였다. 그 후 로자티에게 사사하고, 51년 영화 《가극왕 카루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유럽·미국 등지에서 오페라와 독창으로 활약하였으며, 유행가도 불렀다. 타고난 미성(美聲)에 곡 해석이 뛰어났다.
 
 

              도밍고   <Domingo, Placido>(1941.1.21)
에스파냐의 테너가수. 마드리드 출생.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양친은 모두 에스파냐의 가극 사르수엘라의 가수였다. 멕시코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배운 다음 성악을 전공, 처음에는 사르수엘라의 가수로서 활약하다가 1960년 멕시코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드역으로 출연함으로써 오페라의 테너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62∼65년에는 이스라엘 국립오페라에 소속되어 활약, 66년에는 뉴욕의 무대에 서고 이후 세계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노래하였다. 폭넓은 레퍼토리와 확실한 스타일의 표현력을 가진 가수로서 700회 이상 무대에 섰다. J.카레라스, L.파바로티와 함께 세계 3대테너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근년에는 오페라의 지휘자로도 활약한다. 91년과 95년 내한 공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