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아내의 자리

이예경 2009. 8. 11. 13:58

아내의 자리

이 예 경

사무실을 난생 처음 계약하고 와서 우리는 뭔가 일 저지른 기분이라 잠을 설쳤다. 남편은 명퇴 후 개인 사업자가 되면서 야생동물같이 살게 되었다며 걱정반 기대반으로 긴장한 모습이다. 얼떨결에 나도 직장여성이 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전문인 회사에서 비전문인인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할 리 없지만, 나이 오십에 처음 대하는 일이니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부부가 이제는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될 생각에 나는 좋기만 하다. 지난 세월, 새벽출근에 늦은 귀가에다 외국출장까지 잦았던 남편이어서 나는 항상 기다림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회사일이 바빠서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동생들의 결혼식, 부모님 생신 등 집안 행사에도 빠지기 일수여서 항상 아쉬움을 주었지만 앞으로는 항상 옆에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서다.

결혼 초에는 대학원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내가 잠시 직장생활을 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보모로, 중년에 들어 한의학을 배워 간호사 같은 아내이다가 이젠 부하직원이 된 셈이다. 남편은 내게 부하직원이 웬말이냐며 동업자라고 주장 하지만, 그제나 저제나 내 역할은 저고리의 안섶같이 드러나지 않는 자리이다.

개업식에는 많은 친구들이 방문해 주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남편에게 사업의 성공담으로 기분을 띄워 주기도 하고, 실패담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하는 등, 성격 따라 십인십색(十人十色)의 조언을 해준다. 그러면서 내게는 남편을 기죽게 하지 말라는 오직 한가지 당부 뿐이다. 내가 이미 그 점에 신경 쓰고 있는데도, 그들 모두는 그 점에 대해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부부가 온종일 사무실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니 그전과 달리 서로의 일이 가까이 보인다. 남편은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사업이야기만 할 때가 많다. 나는 매사에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사업적으로는 맞장구만 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자기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는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불평이다. 정답보다는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다. 날더러 동업자라고 하던 말은 농담이었나 보다. 그가 내게 의견을 물을 때는 무조건 동의해 달라는 뜻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아내직원은 일반직원과 달리 시키는 일 외에도 알아서 일하고, 꾀를 피우지도 않는다. 정직하고 물자절약은 솔선수범이요 오버타임에도 불평을 않는다. 봉급은 물론 보너스도 없지만 소홀한 대접에 사표 낸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사무실에서는 왕초보 사원이다. 남편은 내게 신입사원 대접은커녕 닥치는대로 각종의 일을 시키고는 그런 것도 모르냐며 어디든 물어서 당장 해결해오라고 성화다. 모르는 일 투성이라 나는 열등사원 취급받기 싫어서 책도 사보고 사업하는 친구에게 전화로 알아보고 급하면 세무사니 법무사에게 뛰어가서 겨우 발등의 불을 껐다. 그러면서 역부족인 자신에 화가 나고 심적 갈등이 생겼지만 내색도 못한다. 개업식 때의 조언에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무실 일에 주력을 하다보니 집안 일이 밀리고 일거리는 끊임이 없다. 발등의 불만 끈 채 일단 집을 나서면, 잊고 있던 회사일 걱정에 마음이 바빠 걷지를 못하고 뛴다. 그런데도 이웃부인은 부부가 종일 같이 지내다니 복이 터졌다고 속도 모르는 말을 한다. 집안일 때문에 정시 출근이 어려운데도 남편은 매번 왜 이제 오느냐는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니, 이른 새벽부터 내내 서서 일하던 나는 앉을 새도 없이 커피를 타면서 피곤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중고를 겪게 되었지만 집안식구들은 그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김치 맛이 달라졌다는 둥 심지어 과자를 구워주지 않는 것까지 불평이다. 아이들이 귀가하면 이야기를 들으면서 졸음이 쏟아진다. 열등한 직원에 태만한 주부 노릇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문득 왜 이렇게 살게 되었나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

어느 날 목이 아파서 이비인후과로 내과로 다니다가 결국 한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게 심장에 열이 넘쳐 기관지까지 상했다면서, 생활에 변화가 있었느냐 하였다. 내 증세는 뜻밖에도 홧병이라 했다. 홧병은 육욕칠정(六欲七情)으로 기(氣)의 순환이 문란해짐으로써 오장육부에 이상이 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병이 내게도 올 줄은 몰랐다. 마음씀이 너그럽지 못해 작은 그릇이 넘쳐 들킨 것 같아 창피하다.

길을 떠났다. 들판이 나오고 낯선 동네인데 로봇들이 쇳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막막함에 한숨을 쉬다가 깨어보니 꿈이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종일 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로봇의 특징은 입력을 해야만 작동되고 말도 안 통하고 감성은 없는 것이다. 그런 로봇 같은 남편과 지내면서 나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없이 로봇처럼 지내왔다는 뜻일까. 그래서 은 식구들이 내가 힘들어 지칠 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참을성이 한계에 달해서 이제는 심신의 고단함도 감출 수가 없다. 조용하던 로봇이 입을 터서 고통을 표현하니 남편은 날더러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을 자기가 이제 알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그 말에 나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참지를 못한다. 지난 삼십 여 년간 내가 그를 지극정성으로 섬긴 것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서로가 상처주고 상처받는 여러 사건이 지나갔다. 이제 보니 우리는 잉꼬부부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나도 억울했던 일이 자꾸만 생각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잘 살아봐야 이십년 남짓인데 이러면서 어찌 사나 하는 맘에 여러 가지 상상을 많이도 해보았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도 햇갈릴 때가 있다. 친구는 지난 삼십여 년간 내가 너무 이타적으로 살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니까 진짜 사랑을 했던 거라고 위로를 한다. 그러니까 짝사랑이었다.

지나간 세월, 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그의 관심과 기호에만 맞추며 살아왔지만 남편은 바깥일에만 몰두하였으니 그가 식구들을 이해하고 걱정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매사에 자기주장만 하며 식구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과 나는 온종일 같이 지내고 있었다. 그와 의사소통을 제대로 해보려고 한동안 말다툼을 많이도 했다.

상처가 속에서 벌겋게 부풀고 곪을 때는 고통스러워도, 일단 터져야 고름이 밖으로 나와 결국 아물게 되는 것인데,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조용하다는 생각으로 그 터지는 것을 나는 너무나 겁을 냈나보다. 참는 것은 순간의 평화였고 결과적으로 내 몸에 병만 얻었으니 미련스럽기도 하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변해야 해결된다는 것도 배운 점이다.

이제 나의 바깥생활도 칠 년째로 접어든다. 지나고 보니 그때 안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보인다. 부부지간에 안정을 찾았다. 나도 사무 보는 일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 능숙해졌다. 내가 힘들어했을 때 남편은 일도 모르는 왕초보 사원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하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남편의 기를 살리는 길은 아빠 힘내세요 라는 따뜻한 말이나 고분고분한 태도 이전에 아내도 뭔가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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