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늦깎이 글쓰기

이예경 2009. 8. 11. 13:42

늦깎이 글쓰기

이 예경

 

우연히 펼쳐든 지역신문에서 문학 강좌 기사를 보았더니 강사의 이름이 눈에 익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저자일까 하여 전화로 확인해보니 바로 그 저자가 10월부터 시청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였다. 웬 행운인가 하여 그날로 신청을 했다.

내가 그 저자의 강의를 듣기로 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동안 친구들과 어울려 취미생활로 합창단에 나가보았고 등산과 테니스도 하면서 재미있었으나, 이것은 좋은 날씨에 서로가 어울려야 가능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일기에 상관이 없고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좋았다.

지난봄에 이 지역 도서관의 문학 강좌에 갔다가 독서회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참석했을 때다. 사십대 전후의 동네 주부들이 스무 명 정도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에 이끌려 계속 참여하였다. 그런데 그 가을에 작품집을 만든다면서 모두 참여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사십이 넘도록 남이 써놓은 글 읽기만 좋아했지, 직접 써본 일이 없어 난감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니 소설이니 콩트니 하면서 작품들을 내 놓았고, 마감 날은 다가오는데 나는 골치만 아파왔다. 대학 때 음악을 전공한 회원 하나는, 콩나물 대가리도 모르는 사람에게 작곡을 하라는 격이라면서 빼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었던지 그도 시를 써왔다. 나는 답답하여 머리를 식힐 겸 대청소나 해야겠다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결국 그것을 소재로 하여 하나 써냈다.

연말에 책이 나오고 보니 대다수 회원들은 만족스러웠는지, 해마다 작품집을 내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쓴 작품을 읽으며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해마다 이럴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궁리 끝에 서점에 가서 골라온 것이 수필 쓰는 법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은 예문이 많아 이해가 쉬워서 금방 읽혀졌다. 나는 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들에게도 권하여 함께 보면서 글을 다시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런 중에 책의 저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수필은 아름답게 꾸며서 쓰는 것이 아니고 느낌이나 생각을 소박하게 쓰는 글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나도 체험한 것을 글로 남겨 놓는 것이 뜻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얼마 전에 시어머님의 칠순 잔치를 치렀기에 글감이라 생각되어 ,선물로 밍크코트를 해드리기 위해 동서들 간에 오간 이야기를 써보았다. 친구들이 읽어보더니, 솔직한 체험담이라 피부에 와 닿는다면서 재미있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내달에 자기도 치를 일이라 좋은 참고가 되겠다면서, 복사하여 동서들에게 돌린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읽어볼수록 너무나 구체적이고 솔직한 표현으로 속을 다 드러낸 것에 부담스러워졌다. 딸아이는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 날에 그 글을 감추어야겠다 하였고, 남편은 어머니가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소설이나 콩트로 쓰지 그랬느냐는 말도 들었다.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쓴 글을 가지고, 다시 도움을 받아가며 완곡한 표현으로 고치고, 장황한 표현을 걷어내어 글의 분량을 반으로 줄이면서, 간결하고 소박하게 쓰는 것은 문장 공부 이전의 문제임을 알았다. 평소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말이 앞서니, 어순이 틀리거나 장황한 설명조의 문장이 많았던 것이다.

그 뒤로 써본 것이 아파트 굴뚝에 둥지를 틀은 까치의 이야기였는데, 관찰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엮어 나가다보니 그래서 어찌되었다는 것인지 읽은 뒤에 남는 것이 없었다. 생각이 들어가 의미가 실려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평소에 무심하게 지내서, 머릿속에 입력된 것이 많지 않으니 출력할 것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공부를 하고나서야 새삼스럽게 알았지만 나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요즘은 주위에서 문젯거리나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글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을 가지니 도처에 글감이 널려있는 것이 보인다. 그동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써보겠다고 한 것이 우습기만 하다. 조그만 이야깃거리밖에 안되는 소재일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가고 인생의 문제를 생각할 때, 수필은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내일은 수요일, 수필 공부하는 날이다. 요즘은 우리 집에 모여 각자가 써 온 것을 같이 퇴고도 하고 좋은 작품도 읽는다. 강사의 예리한 지적에 감탄사가 나오고, 때로는 무안해져서 웃어넘기기도 한다. 내게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강사의 당부가 항상 끝나지 않은 숙제이다. 그러다 보면 나이 드는 것도 세월 가는 것도 잊는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갔고, 요즘은 회원들의 작품에 달라진 점이 보여 그들의 노력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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