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뻐꾸기를 따라서/ 이예경

이예경 2009. 7. 10. 22:53

뻐꾸기를 따라서

 

내가 뻐꾸기를 처음 본 것은 60년대에 큰길 버스정류장 앞의 시계방에서였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눈이 멈춘 쇼윈도 속에서 벽에 걸린 새둥지의 문이 활짝 열리며 뻐꾸기가 튀어나오더니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열두 번이나 뻐꾹뻐꾹 소리를 냈던 것이다.

 

버스정류장의 극심한 소음을 능가하는 그 자연의 소리는, 도시생활 밖에 모르던 나로 하여금, 순식간에 깊은 숲에 둘러싸인 것 같은 편안함을 주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집을 가지게 되자 그 기억을 살려서 내 거실에서도 그런 뻐꾸기가 울리도록 했다.

 

그 화려했던 봄꽃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청계산은 나날이 신록으로 채워져 갔다. 엉거주춤 하는 사이 계절이 바뀌어 산의 향기도 달라진다. 등산로 초입부터 좔좔 흘러내리는 시내를 건널 때는 속세에서 다른 세계의 문턱을 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은 자기들이 주인인양 멀리서도 지저귐으로 손님을 반겨준다. 귀에 들리는 대로 이런저런 새들의 소리를 흉내 내면서 걸어가면 나도 새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마냥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뻐꾸기 소리가 제일 반가웠다. 그 소리에 내 심장이 콩당콩당 뛰고 마음이 온통 새한테 쏠려서 친구랑 나누던 대화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심호흡을 해서 목청을 가다듬고 뻐꾸기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메아리치듯 뻐꾹 뻐꾹 소리를 보낸다. 새는 세 번, 두 번, 그러다가 다섯 번을 반복하며 뻐꾹 소리를 바꾸지만 나도 질세라 똑같이 따라한다.

 

한참을 재미있게 올라가는데 갑자기 건너 산에서 들리던 새소리가 사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흥겨워진 내가 새소리 흉내를 멈추지 못하자 친구는 내게 고만 좀 할 수 없겠느냐 한다. 좀 시끄럽기도 했겠지만 말없이 혼자 가기도 심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중턱에 다다르니 뻐꾸기 소리가 다시 들리는데, 어째 가까운 산으로 다가온 듯 느껴졌다. 새는 리듬을 잃지 않고 내 소리에 화답하듯 소리간격을 조종해준다.

 

그러다가 내가 시험 삼아 횟수를 두 번, 다섯 번으로 바꾸니 자기도 나를 따라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새는 처음 본다. 우연치고는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 새와 대화하느라 열중해서 가파른 산길도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꼭대기까지 거의 올라왔다.

 

그런데 새소리가 제법 가까이에서 들린다고 느낀 순간, “푸드득” 소리가 나면서 내 머리 바로 위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눈앞에 잘생긴 산새 한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뻐꾸기였다. 나는 갑자기 현기증이 나도록 놀랬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내가 못할 짓을 한 거구나. 그 뻐꾸기는 짝을 찾아 먼 산으로부터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호흡을 맞추면서 찾아왔던 것인데 나뭇가지에 숨어 상대를 훔쳐보고는 기절초풍한 것이다. 날개가 있나 부리가 있나 다리는 굵고 아무짝에도 쓸데없이 덩치만 큰 괴물이 뻐꾸기 소리만 잘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놈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름다운 소리에만 취해 맹목적으로 따라 해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뭔가 통했다는 생각, 비록 퇴짜를 맞기는 했지만 산새가 내 소리를 듣고 찾아왔던 것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뻐꾸기. 사실 나는 뻐꾸기를 잘 모른다. 탁란(托卵)의 습성을 지닌 영악한 새라고도 하고 새끼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의 새라고도 한다. 종족보존은 해야겠고 키울 능력은 없으니 그처럼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뻐꾸기가 어수룩한 내 소리에 속아서 산꼭대기까지 따라오다니 우습기도 하고,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웬일인지 즐겁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한 수 위라는 게 걸리기조차 한다. 영악하고 무자비하다면 사람보다 어찌 더하겠는가.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게 어찌 사람에 앞서가랴. 본의가 어쨌거나 뻐꾸기까지 속일 수 있다는 게 결국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있겠는가.

 

오늘도 산에서는 뻐꾸기가 운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취해 나도 또 소리를 내본다.

그러나 이젠 내 소리에 속아주지 않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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