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제 설움 제가 풀어내듯 .....김선화는....

이예경 2009. 8. 5. 21:32

제 설움 제가 풀어내듯

                ㅡ 김선화, 그 문학의 뒤안길에서




                                  배 준 석


                 (시인〮〮계간『문학산책』주간)


          


    




  세월은


  명함도 내밀지 않고 찾아와 문패도 달지 않고 살다가 가벼운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난다. 뒷덜미라도 붙잡으려 손 휘저어야 그만큼 허무만 쥐게 된다. 그 세월이 10년 하고도 5년이 더 지났다. 10년 넘으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그 말도 10년이 넘어 또 변했다.                               


  그렇게 세월만 흐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수필가로 등단한지 10년이 되어 다섯 권의 수필집을 냈고, 두 권의 시집으로 시인 반열에 오른 지 4년이 되었으며, 청소년소설로 소설가가 된 지 3년이 지나 청소년소설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일반적으로 제3자를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라고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한 한 사람, 김선화 만을 지칭한다.




  김선화는


  군포역 앞에 있는 군포시립도서관 문예창작반에서 나와 첫 인연을 맺었다. 30대 중반의 한창 때에 만나 지천명에 이른 지금까지 그는 내 곁에 문인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당시엔 동시, 동화를 쓰는 듯 했고 작품을 제출하면 고쳐주기도 했다. 이후 나에게 문예창작 기초과정 강의를 빠짐없이 들으며 쓰고 배워 나갔다. 그리고 군포여성문학회를 만들어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 왔다.


  그는 대전 유성에서 계룡산 가는 길목에 있는 신도안 사람이다. 신도안이 어디인가. 과거 조선 초 태조가 신(新)도읍지로까지 생각했던 명당이며 길지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그의 태생은 보잘것없는 충청도 두메산골 같지만 정작은 큰 인물이 나옴직한 곳이다.


  과거 너나없이 살림살이가 부실하고 형제는 많아 먹고 사는 일조차 힘들었을 적 이야기는 지금 생각하면 생살 찢듯 아픈 기억이 아닐 수 없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한(恨)을 끌어안고 도회지로 나와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문학이전에 쓰디 쓴 인생체험으로, 행복이전에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공부이전에 뜨거운 눈물을 먼저 흘리고 배운 사람이다. 이는 구차하다고 버릴 수 없는, 오히려 이젠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문학길에서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값진 자산이다.


  그는 주변의 어려움뿐인 현실을 하나하나 헤쳐 나와 기적 같은 삶을 만든 사람이다. 젊어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의 주인공처럼 너무 일찍 냉정한 현실과 부딪혔고, 스스로 삶의 진리를 깨우쳤으며, 피눈물 나는 고행의 길을 여봐란듯이 졸업한 남다른 경력의 소유자이다.




  수필은


  김선화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준 존재이다. 나는 다만 운이 좋아 그의 문학길에 첫 스승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나와 공부한 지 5년이 지나 『월간문학』에 수필로 당선하여 수필가가 된다. 수필이 무엇인가. 마치 수필이란 장르는 김선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흔히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그가 걸어온 인생길은 그대로 감동스런 수필을 엮어내기에 마침맞은 것이다. 천상 이야기꾼일 수밖에 없는 그가 줄기차게 수필을 써온 저변에는 당연 그의 남다른 인생길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이승에서 떠나보냈다. 그 아픔까지 그는 수필로, 詩로 풀어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한(恨)을 풀어내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원형적 한을 그는 마지막 주자인양 글로 풀어낸 것이다.




  김선화는


  늘 웃음을 앞에 두고 살아간다. 사람은 무엇을 앞 세우냐에 따라 그 이미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느긋함과 은근한 웃음이 사람 좋은 김선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 웃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천진스러움으로 동시와 동화를 쓰던 일들이 그에게 청소년소설이라는 장르를 선물한 듯하다. 금년 그는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으로 청소년소설집을 우리 앞에 선물처럼 내놓을 것이다.


  밝고 맑고 꾸밈이 없는 청소년들의 꿈과 예민한 감정을 그는 특유의 은근과 끈기로 그려낼 것이다.


  그러나 삶을 어찌 웃음으로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때로 지나친 아픔으로, 참을 수 없는 화(火)로 몸을 부르르 떨 때도 있으련만 그는 또 참고 홀로 감당하는 인고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쌓이고 쌓여 자칫 병으로 키워질까 걱정도 된다. 그도 사람인 이상 어찌 아프지 않고 화가 없을 것인가.




  詩는


  그에게 있어 흥겨운 노래요, 춤이다. 참는 것이 생활이 된 그의 인생길에 여유며 위안이며 때로 탄식이며 화이기도 하다. 그가 첫 시집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그러나 그는 상당한 양(量)의 詩를 쓰고 있었다. 수필로 다 풀리지 않는 사연을 그는 詩로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詩는 노래였다. 그는 한편으로 신명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詩로 스트레스도 풀고 아픔도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권이나 되는 시집이 그 증거품이다.


  그는 노랫가락을 알고 있고, 노래의 주제를 알고 있으며, 노래를 불러야 할 확실한 이유를 이렇듯 알고 있다. 수필을 쓰다가 소설을 쓰다가 아니 살아가다가 힘들고 아플 때 제 설움에 겨워 제가 울듯 제 가락에 알맞은 가사를 얹어 詩를 쓴 것이다.




  김선화는


  심지가 곧고 깊은 사람이다. 나와 오랜 인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의 종교도 모른다. 文學의 길에서만 만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의 글 속에서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그가 웃을 때마다 나는 보살의 미소를 떠올리곤 한다. 신도안에서 가까운 동학사나 갑사에 계신 보살님일까. 아니면 그의 어머니를 닮아가며 생긴 모습일까. 그도 아니면 이제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된 내 시력의 연륜일까. 어느 순간 그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올 때, 나는 마치 온화한 보살님을 만나듯 잠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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