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허리띠
남녀가 주고받는 선물에도 전통처럼 전해내려오는 물건이 있다. 그 중에도 여성이 남성의 마음을 잡고 싶으면 허리띠를 선물하고, 떠나길 원하면 구두를 선물하라는 이야기가 오랜 속설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흐른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말씀을 빌면 ‘맘에 드는 사내를 딱 옭아 채란 뜻으로 허리띠를 선물하는 거’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몇 번인가 허리띠를 산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여행길에 친정식구들을 생각하며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가 일행의 놀림을 받았다. 남자형제들 수만 해도 일곱이었으니 내 어떠한 해명도 통하질 않았다.
이처럼 암암리에 전달되는 이 상징적인 의미는 사람들 입가에 미소를 물리기도 한다. 마카오의 한 사원에는 남자의 허리띠가 법당기둥을 칭칭 감고 있다. 그 기둥마다에는 알록달록한 봉투들이 묶여있는데, 그 고운 봉투들은 다름 아닌 여성의 속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건 바로, 아내가 바람나지 않길 바라는 남편들의 염원이었다.
사람들의 심리는 그렇게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까지 닿아있었다. 그냥 머리 조아려 가슴 속의 염원을 비는 우리네의 관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노골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男과 女, 女와 男 ―이 오묘한 관계는 바다 건너의 다른 민족 사이에도 우리와 비슷한 정서로 작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해괴한 일은, 그곳을 돌아본지 두 해가 넘었건만 그날 그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또렷하다는 거다. 아내 몰래 봉투를 붙들어 매는 남성들의 모습이 자꾸만 연상된다. 자유를 꾀하는 쪽과 잡아두려는 쪽의 팽팽한 균형에 마음 머물러, 쉽게 지나쳐지질 않는다. (2007.2.)
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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