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무어라도 할 수 있는 나이

이예경 2009. 7. 10. 21:03

어제는 운전을 많이 했다

외곽순환도로 타고 송추로 가서 우남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만나

그 친구랑 남양주  축령산 아래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아버지를 뵙고

그 친구를 데려다주고 나는 잠실 친정집에 들렸다가 집에 왔다

 

외곽순환도로는 차량이 많아도 밀리지는 않았고

송추 친구아파트는 주위가 너무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버지는 63세 내친구를 보곤 너무나 변했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글쎄 여학교때 모습이 입력되있으시니 놀랄 만도 하지만 나는 민망...

그래도 옛일을 기억하여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니 친구가 좋아했다

 

친구 데리고 아버지를 뵈러간 이유는 혼자 먼길을 가기가 심심해서였다.

친구랑 회포도 풀려고 벼르던 참이고 길친구도 있으면 좋겠고 

그 친구가 내 아버지를 뵙고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해서다 

 

요즘 한국에 친정식구가 한명도 없다

동생 다섯이 모두 외국에 있고 어머니마저 카나다 동생네 가셨다

맏딸을 믿고 가신 거겠지...

 

둘째, 셋째는 미국에 살고

넷째는 카나다에 살고

다섯째는 미국과 카나다를 방문중인데 7월말에 귀국예정

여섯째는 2년 계약으로 카나다 체류중인데 내년 7월 귀국예정이다

어머니는 7월 한달 카나다 구경가셨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사람은 달랑 아버지와 나 두 명 뿐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쌀게반찬과 요오깡(단팥젤리) 과일을 가지고 갔다

병원음식으로 족하다 말씀하시나 나도 빈손으로 가는건 마음이 불편하다

아버지께서는 식사도 잘하시고 혈색도 좋으시다

엄마는 카나다에 잘 갔니? 물으신다

기분이 좋을리는 없겠지만 내색을 안하신다

 

카터대통령이 지은 노년기의 삶과 윤모촌 선생님의 수필집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책을 많이 보셨는데 요즘은

시력이 좋았다 나빴다 해서 때로는 잘 안보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조금씩 밖에 읽어지지 않으니 집중이 안되서 재미가 없다고 하신다

한참 쉬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보일때도 있단다

 

그렇게 독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눈 때문에 독서를 잘 못하시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어쩌랴.....

귀도 잘 안들리지 치아도 틀니를 하셨지...

보행도 어려우시고 기저귀를 차시지....나 참 답답하지만.....

그래도 크게 말하면 잘 들으시고 식사도 잘 하시고 휠체어를 이용하여

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오는 길에 잠실 친정집 아파트에 들려 환기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었다

위로 아래로 양 옆으로 화분이 많기도 하다

샤르륵 샤르륵 화분의 흙이 물을 흡수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싹 말라있던 화분의 흙이 물을 머금고 아주 편안해져 나도 기분이 좋다

 

집안을 둘러보니 화초도 그렇지만 식탁도 싱크대도

그리고 거실바닥도 벽에 붙은 그림들

안방에 있는 커다란 침대가 주인을 그리워하는것 같다

특히 엄마를 기다린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다

 

편지통에 있는 우편물을 꺼내왔다

집이 궁금하실 어머니가 보시라고 육자매 홈피에 글을 올릴 것이다

외국에 살아도 우리 육자매는 수시로 거기서 수다를 떨고 있다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 휴게실에도 컴퓨터가 있어서

매번 사연도 읽어드리고 사진도 보여드리곤 했는데

어제는 아버지께서 홈피주소를 물으셨다 직접 들어가 보시려고 하시나보다

 

식구들이 많이 그리우셨나보다

증권 사이트에는 자주 들어가셔도 육자매홈피 방문은 안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이젠 아버지도 엄마처럼 매일

육자매홈피에 들어오셔서 소식도 보시고 글도 올리시면 좋겠다

소식도 보시고 글도 올리시면 아버지 자신이 심심치 않아 좋을 것이다

 

5시 반에 귀가하여 저녁 준비를 하는데 피곤해서 자꾸만 눈이 감긴다

눈감으면 고속도로가 펼쳐지고 양쪽에 짙푸른 색갈로 무성한 숲도 지나가고

얕으막한 시골집도 보인다

병원의 노인들도 보인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젊고 싱싱하다

그래서 할 일은 많다만 ....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건 너무나 좋은 일이다

 

얏호오!

나는 지금 무어라도 할 수 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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