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선택

이예경 2009. 7. 9. 14:21

선택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 정답을 택하느냐, 오답을 택하느냐

 

 

 

시애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에너지 충천코자 열흘간 휴가 나왔다고 아침에 전화를 했다. 밖에서 만날 것 없이 내 집에 오라 해놓고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안 그래도 겨울 옷 넣고 봄옷과 여름옷을 꺼내고 손질하던 참이라 방이 어수선한데 갑자기 청소에 정돈에 음식장만 하느라 번갯불에 콩 볶듯 동분서주 하면서, 몇 년 전 보았을 때 뚱뚱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고 날씬했던 모습이 미국생활로 10킬로 이상 늘었다고 했었다.

 

오후에 날씨가 돌변해서 비바람이 치므로 안 올까봐 걱정했지만 의리의 친구는 어김없이 내 집에 왔다. 그런데 너무 놀란 것은 친구의 모습. 지난 20여 년간이나 뚱보였는데 지금은 학교 때 같이 작고 날씬한 옛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놀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니 체중이 줄은 지 얼마 안 되었다며 “코 때문이지”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근 언제부터인가 코가 좀 무거웠다. 자꾸 막히고 콧속이 부어 답답하더니 어느 날 코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해서 한밤중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정상으로 나왔기에 정밀검사를 더 받았는데, 의사는 콧속이 가렵고 기관지가 부으면서 호흡이 어려웠던 원인이 알레르기 때문이고 음식이 문제였다고 했다.”

 

의사는 32가지의 음식목록을 적어주면서 절대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내용인즉, 밀가루음식과 유가공 제품과 쇠고기 등……. 그러니 빵, 케이크, 과자니 우유,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피자 등인데, 미국에서 그런 걸 안 먹으면 뭘 먹고 살 지 막연했다 한다. 더욱이 친구 가족이 햄버거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니 난감하였고, 한솥밥 먹는 식구들이 모두 같은 식사를 해왔지만 별 문제없기에 그냥 무시하고 살기로 했단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또 자다가 숨이 막혀 새벽에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기침까지 심하여 입원 치료를 받으며 너무나 혼이 났기에, 집에 오자마자 옛날에 팽개쳤던 종이―먹지 말라는 음식목록―을 찾아 그대로 실시 해 볼 수 밖에 없었단다. 식생활을 대폭 개선하여 쌀밥에 김치와 나물 등을 먹고 32가지 금식 목록을 그대로 지켰다. 그런데 운동도 안 다니는데 몸이 더 가볍고 기능이 좋아져 6개월 지나자 신기하게도 체중이 58에서 50킬로가 되었단다.

 

20년 넘게 매일 땀 흘리며 에어로빅 운동을 했어도 안 빠지던 살이었는데 알레르기를 치료하니 비만까지 저절로 해결되었다면서 친구는 이제 체중이 더 이상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똑같은 음식도 개인의 체질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일상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사소한 문제에 신경을 못 쓰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하루하루 사소한 것이 쌓이며 세월이 지나면 결국 커다란 문제로 변하는 경우를 본다. 암이 걸리기 위해서는 10년, 당뇨병이 나타나려면 20년을 공을 들여야 된다는 비유는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문제가 쉽게 보이지 않다가 일이 터지고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문제에 접근한다. 사소한 일상의 모든 일에는 기본적인 법칙이 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법칙대로 하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잘 모를 때는 조상들의 지혜를 믿고 무조건 1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먹던 음식을 먹고 살라 던가, 땀날 때까지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하라 던가, 걱정이 있으면 몸이 삭아버리니 무조건 웃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습관을 가지라 던가 하는 말들은 모두 상식적인 이야기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에 따라 정답과 오답에 대한 분별력이 다른 경우를 본다. 정답을 택하느냐 아니면 오답을 택하느냐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분별력이 모자라면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일이 터지고야 정답이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분별력은 대가없이 생기는 게 아닌가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고통스럽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하다보면 결국에는 더 큰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래서 고통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선택은 내 손안에 있고, 뭔가 바꾸고 뒤집어야 개선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탁월한 선택으로 환경을 개선한 내 친구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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