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길 역사산책 --- 해설사와 함께 떠나요"
10월의 화창한 날에 해설사와 함께하는 역사문화산책 문원길을 다녀왔습니다.
과천에서 터를 잡은지 34년. 주로 다니는 길이 집에서 전철역, 시장, 교회,
아니면 청계산 관악산 등산로이지만 나름 과천을 즐기며 살아온 것이 사실인데
복지관에서 역사공부반에 들고 나서는 과천의 역사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문원동 일대를 잘 아는데 어떤 역사가 있을지 한편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공원 나들길 --> 청계산등산로--> 문원동 정문형 묘소--> 영보수녀원
--> 차천로 묘역--> 효자 최사립 정문--> 과천문화원 향토사료관
일행은 대공원나들길 입구에서 운동화 차림을 오전 10시에 만났습니다
해설사님을 따라 산쪽으로 조금 걷다가 해설을 듣기 위해 벤치에 모여 앉았습니다
과천의 일반적인 역사 이야기로 시작하여 옛날 사진을 몇장 보여주셨습니다
과천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입니다. 학교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지요
문원동 일대의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을 보니 제가 1986년 봄에 이사왔을때 생각이 났습니다.유치원생 막내가 문원동 논에서 잡아온 올챙이를 보여주던 일, 집에서 키워도 한참 후 올챙이 뒷다리가 나와 신기해 하던 적이 있었지요. 여름 밤, 창문을 열고 누우면 개굴개굴 청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일이 엊그제 같이 남아있네요.
이 그림은 1960년대 관문사거리 인데 동네 어르신의 증언에 따라 작성한 지도랍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에는 관문사거리 큰길 중간에 고목나무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일행은 동쪽 대공원 방향으로 길다라 걸어갑니다. 대공원 나들길로 접어드니 계수나무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를 붙잡네요.
왼쪽에 대공원주차장이 끝나는 곳에 길이 갈라지면 우리는 오른쪽 서울대공원 야구장 팻말을 보며 아스팔트 길로 따라 올라갑니다.
가는 길에 지각생 일행 한 분이 더 오셔서 길에서 반갑게 만났습니다
해설사는 숲길을 가기전에 숲해설도 해주고 나무에 대한 깊은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무는 평생 한자리에서 살지만 자기 몸을 지키고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솔 씨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서 종족을 보존하고, 느티나무는 잎에 씨를 붙여 날리는 등, 자기 나름의 종족보존과 영역을 위해 동물의 세계처럼 투쟁하며 산다고 합니다.
식물이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대견해서 다시 보게 됩니다.
10여분 올라가다가 왼쪽에 정자가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문원동으로 넘어가는 등산로인 다람쥐 산책로가 나왔네요. 청계산 줄기인데 청계라는 말은 그 옛날에는 용자를 써서 청룡산(靑龍山)이라고 했고, 그 후로는 마을에서 닭이 많이 울어 닭 계 자를 써서 청계산(淸鷄山)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푸른 계곡을 뜻하는 청계산(淸溪山)이라고 불리운답니다.
완만하지만 오르막 숲길이니 미끄러지지않게 조심하면서 계속 올라갑니다
과천시립 문원도서관 안내가 나오더니 내리막길로 이어집니다
문원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멀리 인가와 떨어진 숲속 하늘아래
사진으로 보면 한가운데로 산중턱에 비석이 보였습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증손자의 묘역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골백번 지나면서도 그런 비석이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역시나 내 눈에는 아는 만큼만 보이는가봅니다
묘역에 올라 보니 양지바르며 탁트인 시야 건너편에 산이 보이고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우의정 정문형 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정문형(鄭文炯)은 세종9년1427~연산군7년(1501) 시대에 살던 분으로
증조는 조선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조부는 정진, 아버지는 정 속, 어머니는 경주이씨 배위는 정길홍의 따님 동래 정씨입니다
세종29년914470 별시문과에 급제, 정자 감찰 예조좌랑을 지내고 세조1년(1455) 교리로서 좌익원종공신2등에 녹훈되었지요. 이후 예조정랑 재직시에 또한번 기생을 불러들여 음주한 죄로 장형을 받았어요. 1464년 경상도 관찰사로 갔고 이듬해 진주에 살던 소훈 윤씨 어머니의 병환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죄로 의금부의 국문을 받고 파직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도전 가문의 후광 덕인지 1466년 함길도 절도사 장예원판결사를 거쳐 이듬해 동지중추부사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문원동 양지바른 언덕에 잘 다듬어진 묘소가 편안하게 보입니다. 합장을 한 듯 커다란 봉분이 있고 문신석이 좌우로 각 한 쌍식 서 있습니다. 비석이 높다랗네요.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증손자 정문형의 묘소가 어찌하여 과천에 모셔졌는지는 모르지만
후손들이 정도전의 묘가 경기도 과천현 10리 동쪽에 있다는 전설과 소문을 근거로 과천 일대의 야산을 탐사한 결과, 많은 양의 고급 조선백자가 시신의 머리부분과 함께 발견되었고, 정도전의 수급으로 추정되어 정도전 사당의 맞은편 야산에 매장하였답니다.
정문형은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병환으로 고생하는 모친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의금부의 국문을 받아 파직되기도 했다는데요. 묘소는 후손들이 잘 가꾸어서 다행스럽습니다.
성종3년(1472) 병조참판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황해도관찰사 호조판서 1494 공조판서로 산릉 1495 우의정에 승진되고 궤장을 하사받았으나 이해 용렬하고 탐학한 재상이라는 탄핵을 받고 영중추부사를 하였어요. 연산군4년 1498 무오사화때 김종직을 대역죄인으로 논단하였다 연산군7년에 과천 묘역에 잠들었다고 합니다
문인석입니다
문원동 주택가를 지나면서 보니 집집이 커다란 과실수가 자라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감, 모과, 꽃사과 또는 이름 모를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보기 좋았습니다
영보수녀원에 가봅니다. 1958년 카톨릭대 교수이던 선종완 신부님이 사재를 털어 경기도 소래에 12정보의 땅을 매입하여 수녀원 자리를 마련, 1960년에 성모영보 수녀회를 창설하고 1967년 과천면 산골로 이전하여 흙벽돌을 찍어 수도원을 새로 지었습니다. 양계를 치는 한편 1969년에는 피정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범적인 신자생활을 평범한 생활환경에서 보이자는 것, 적은 도움이라도 남에게 성실하게 베푸는 모범을 보이라는것, 소외자, 가난하고 병든자를 찾아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하자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수녀원 주차장에서 저멀리 관악산을 보니 수녀원이 높은지대에 있는걸 알겠네요 탁트인 시야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줍니다.
과천은 어느 곳이든 다 길지(吉地)이지만, 특히 이곳에 있는 영보수녀원 자리를 비롯해서 추사관 자리, 도립도서관 자리, 국사편찬위원회 자리가 명당이라고 합니다. 수녀원은 산 아래 조용히 앉아 있고 지금은 기도시간이라 특히 조용하고 인기척조차 없네요. 일행은 입구에서 가을이 내려앉은 뜨락에 국화 향과 단풍으로 수녀원을 느끼며 돌아 나옵니다.
그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작가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학문을 수학,
문장의 재주가 있어서 통신사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그 때 4,000∼5,000수의 시를 지어 일본인들을 놀라게 하였답니다.
문장이 수려하여 명나라로 발송되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그가 작성하였는데,
문명이 명나라에까지 떨쳐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묘역을 지나치게 현대식으로 개비하는 바람에 옛모습이 사라져
과천에서는 유적지로 인정받지 못한다니 정문형의 묘소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생각나네요.
산책의 마지막 장소인 과천문화원에 가는 중간에 왔는데요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왕명(王命)에 의하여 조정(朝廷)에서 그 훈공 미덕(勳功美德)을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액자(額字)에 새겨 하사함을 말합니다.
효자 최사립은 편찮으신 어머니가 한겨울에 수박이 잡숫고 싶다고 하여
백방으로 수박을 구했지만 구할 수가 없어 지극히 안타까웠다는데요.
그것이 죄스러워 평생 수박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지극한 효성에 감동해서 왕이 직접 최사립에게 ‘정문’을 세워 주신 겁니다.
최사립(崔斯立)은 1505년 과천 막계(果川莫溪)에서 출생하여 살았던 효자로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그 지극한 효행(孝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각은 소실(燒失)되고 하사받은 액자(額字)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므로, 충효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과천시에서 1995년에 정각을 복원하고 2011년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답니다.
효자 최사립선생의 후손들이 과천에 계속 살고 계시며 활동을 많이 하십니다
그중에 하나로 과천에서는 효문화 보존과 발전을 위해 해마다 ‘효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입지 효 문화제"에서는 효를 주제로 매년 전국의 초·중·고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그림 공모전과 무용대회를 개최. 행사 당일에는 무용대회와 공모전 우수자를 시상하고, 수상자의 축하공연과 글·그림 공모전 입선작 전시회 효문화예술체험, 다문화가족전통혼례, 장수잔치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열립니다. 축제 명칭 ‘입지’(立之)'는 조선시대 효자로 널리 알려진 과천 막계동 출신 최사립선생의 '호'입니다.
드디어 과천문화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향토사료관을 둘러볼 것입니다
과천의 현대판 지도와 옛지도가 나란히 그려져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책들도 있는데요
생활용품도 있어요 불과 40년전에만해도 어느 가정에서나 사용했던 필수품인 다리미와 인두입니다
향토사료관에서 둘러보니 과천에 대한 내용들이 가지런히 머리속에 정렬이 잘 되었습니다
일행은 저마다 과천에 이런데가 있는 줄 몰랐다고 처음 와본다고 하였습니다
34년을 살아온 저도 처음이었으니까요. 배우면 배울수록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많고 가볼데가 많은 과천인데, 시민 모두가 내가 사는 고장의 역사문화를 잘 알고 고향처럼 지낼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도록 바램을 가져봅니다.
자세히 보면 더 예쁘다는 들꽃처럼 과천도 자세히 보면 볼수록 참 멋진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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