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뜬금없이 전화하여 평소에 살려고 벼르다가 아직 못 산거 있는지,
잡숫고 싶은 요리는 무언지 묻는다.
“된장찌개에 나물이면 언제나 좋지” 했더니,
“그런 거 말구요” 한다.
그러더니 칠순 날에 여러 사람 초청하여 큰잔치를 해드리려는데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알려달라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내 칠순이 다가오니 아이들이 왠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제발 그러지 말기를 바라며 나는 평소대로 우리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아이들이 즐기는 메뉴로 식사하고 스냎 사진에 담는 것으로 족하다고 하였다.
소그룹 아닌 거는 회갑 때 해봤으니 그때 한번으로 족하다.
문득 나의 시어머님 칠순 때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넷인데 남들에게 질소냐 하시며
남들이 받은 거 다 받고 싶다며 전화를 하셨다.
나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에 장남인 남편은 외국유학생활에서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시동생들이 세 명이지만 신입사원, 군인, 막내는 신혼일 때였는데
큰 잔치와 큰 선물을 해드리자고 내가 나서서 말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동서들과 힘을 합해도 어려운 지경에, 아들들도 역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자는 의견과, 형편 껒 하자는 의견으로
두어 달 전부터 전화에 불이 나도록 밀고 당기며 의견을 조정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바를 확실히 주장 하셨고 나는 맏며느리였기에
허례허식이던 무리스럽던 내가 총대를 메고 최선을 다했다
1980년대 당시에 손님은 이 백 명을, 고급 중식당에 초대하고
전문 촬영기사를 불러 비디오 제작, 밍크코트와 투피스에 실크 브라우스에
구두 핸드백까지 맞춰드리려면 비용이 제법 높았다.
어머님 모시고 다니며 물건을 고르고 식당을 알아보며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를 치룬 후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대만족이셔서 평생 쌓인 한이 다 날아갔다고 하셨다.
친구들, 주위 여러분들께서 두고두고 만날 때마다 잔치가 멋졌다는 인사를 받으시고
정장 차림과 밍크코트가 너무나 맘에 드신다며 평생을 즐겨 입으셨다.
세월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평생 얹혀있었던 어머님 내면의 무엇인가가
치유가 되었던 것이라고 느껴졌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화살 같다고 했던가. 이 십여 년이 흘러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기들 할머니의 칠순잔치가 성대했었던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며
내게도 그렇게 비슷하게 해주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세대와 시어머님의 세대는 다르지 않은가.
딸은 내게 트라우마가 있냐며 이제는 어르신 대접을 받으실 때도 되었다고 우긴다.
하여튼 천만의 말씀이다.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정 섭섭하면 자손들이 내게 편지나 카드를 하나씩 써 줘.
글씨 사연 많이 적어서... 정, 쓸 말 없어 어려우면 성경말씀 두어줄 써도 좋아.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 이편지는 정말 받고 싶어, 부탁해.”
다시 생각해봐도 그게 참 좋은 생각 같다. 일하는 것도 편안해야 만나는 것이 즐겁고,
작은 그룹으로 만나야 서로 눈을 마주보며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쁨이 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는
그런 사이로 살고 싶다. 먼 후일까지도 자손들에게 그리움을 남길 수 있다면
더 바랄게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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