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은퇴전과 은퇴후의 다른점

이예경 2016. 6. 23. 11:06

은퇴 전과 후, 달라져야만 하나요?

글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10여년 전에 스위스 융프라우에 처음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높은 데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멋진 풍광이 펼쳐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산악열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가며 쉬지 않고 정상으로 올라갔던 기억 말이다. 산악열차를 갈아탈 때마다 보이던 그린덴발트나 벤겐 등의 그림 같은 마을에 마음이 끌렸지만, 당시의 나는 누가누가 빨리 올라가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무작정 앞만 보고 올라갔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도착해서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만년설로 뒤덮인 융프라우 요후는 어지럽고 눈이 부셔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사람은 많고,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내려오면서 앞으로 이런 식의 여행은 다시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내 삶이 바로 그 여행 같았다. 인생은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정상은 항상 저 멀리 있었고, 마음은 항상 급했다. 정상을 보면 모든 걸 본 거라는 식의 착각이 심했고, 남보다 빨리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중간에 있던 아름다운 마을에 머물며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즐기는 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먼 훗날,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나 생각해봄직한 사치스러운 행위였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과 돈,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단계: 해야 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가 은퇴한 후에

2단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재미있게 산다

 

혹은 

 

1단계: 돈을 번다

그러다가 은퇴한 후에

2단계: 착하게 살며, 좋은 일에 돈을 쓴다.

 

 

즉 위의 2단계 논리에서는 1단계를 지나야 2단계가 온다고 생각하고 1단계의 끝에 있는 정상을 향해 바삐 올라가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에 오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은퇴해야 하는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사는 것, 착하게 살며,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건 이루기 힘든 꿈으로 남을 수밖에.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 중에는 너무 오랜 시간 험한 길을 오르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썼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재미있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무적인 건 요즘에는 1단계와 2단계를 동시에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셰어 하우스를 통해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소셜 벤처 ‘우주’를 설립한 김정헌이라는 젊은이가 “돈 벌고 나서 착한 것 말고, 착하면서 돈 벌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했다”고 말하거나 의정부 시장에 카페를 차리고 법률 상담을 하는 변호사 이미연씨가 “여기서 할머니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걸 볼 때마다 이들의 지혜로움에 감탄이 절로 난다.

 

 

투자에만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내 삶에도 필요하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나다. 돈 버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 착하게 사는 삶, 재미있는 일상을 동시에 추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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