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면 뭐가 좋은가요?
글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요즘 자서전 쓰는 사람이 많던데, 자서전 쓰면 뭐가 좋은가요?”
은퇴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몇 년 전에 만났던 A씨(59세)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A씨는 오래 전부터 은퇴한 후에 자서전을 써보리라 결심했었다고 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한 기억이 더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은퇴한 후에 아내와의 사이까지 나빠지면서
앞으로 남은 노후를 위해서라도 반성할 건 반성하고, 고칠 건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서전 쓰기 과정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저렇게 싸우다가 이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서는
'우리 부모는 저렇게 싸우면서도 왜 이혼하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많이 싸우셨죠.”
장남이었던 그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청년으로 자라났다.
남들로부터는 성실하고 얌전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감 없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처받은 어린 소년이 들어 있었다.
그는 자주 불행했고, 자주 부모를 원망했다. 게다가 자신의 결혼생활 또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서전을 쓰기 위해 가계도를 그려보고,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척들을 만나서 부모의 과거를 추적해보는 과정에서
그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깨달음과 치유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 즉 부모의 싸움이 계속되던 그 시절이
부모 각자의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풍비박산 난 집안의
대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해야 했고,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의 임신으로 인해 결혼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으며,
어머니 또한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하게 된 불행한 차녀였다.
“생전 처음으로 부모가 나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부모가 나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화를 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 삼남매에 대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고,
어미,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들지 않기 위해 끝까지 이혼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어려운 형편에서도삼남매의 등록금 납부일을 지키려 노력하던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A씨는 평생 처음으로 부모의 긍정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내면의 분노가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이래 뵈도 소중한 존재’라는 자기인식도 갖게 되었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전과는 다른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야 아내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부모처럼 싸우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참아서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나는 A씨를 보면서 ‘인생은 해석’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우리 인간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해석은 바꿀 수 있다.
자서전은 내 인생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과거의 불만과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통로도 될 수 있다.
자, 사정이 이러하니, 은퇴 무렵에, 60세를 전후한 시기에 자서전을 쓰는 것이 왜 좋지 않겠는가?
수명도 길어진 요즘, 60이라는 나이는 내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또 하나의 미래를 설계하기에 딱 적합한, 아니 충분히 젊은 나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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