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수선화에게---정호승

이예경 2016. 2. 10. 21:56

수선화에게
     정호승(1950~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더 많이 알려진 시이지만, 원제는 "수선화에게"이다. 꽃집의 조그만 화분에서 가녀린 꽃대를 올리고 수줍은 듯 피어있는 수선화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외로운 사람의 모습을 수선화로 은유하여 제목을 정한 것 같다.
  고독을 존재의 본질이라고도 한다. 외로움은 고독과 비슷하지만 좀 다르게 느껴진다. 절대자 앞에 마주한 실존처럼 고독이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 한다면, 외로움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무언가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시인은 그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한 것이다. 외로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극복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즐기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고독을 씹으며그 맛을 즐기라는 게 아니다. 외로움을 승화시켜 다른 무엇으로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외로움에서 그리움이 생기고, 그리움에서 시가 싹트고, 노래가 샘솟고, 그림이 펼쳐지고...... 사람의 꽃, 삶의 꽃 즉, 사랑이 꽃피는 것이리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애태우지 마라. 궁금하면 내가 먼저 걸면 된다. 기왕에 사는 것 적극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미리 계획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현실에 두려워 말고 부딪혀라. 사람은 스스로 만든 두려움을 두려워하느라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의 삶은 외로운 것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단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갈대숲에서 도요새가 너를 보고 있듯이,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즉,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사람은 어차피 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홀로들이 모여서 함께 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외로움을 견디며 혹은 즐기며, 함께 홀로 가는 것이다.

                     2016.1.30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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