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철인가보다 색갈도 고운 살구가 바구니마다 그득하게 담겨있다. 얼마나 실까..... 입안에 침부터 고인다.
내 시선이 살구에 꽂힌 것을 알아차린 과일장사는 얼른 다가와 살구를 하나 집더니 먹어보라고 디민다. 발그스레 잘 익은게 보기좋아 못이기는 척 입에 넣어본다.
음... 이럴 수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신맛은 거의 없고 어찌나 향기롭고 달콤한지 살구 하나가 나를 온통 행복감에 휩싸이게 한다. 한바구니 그득 담아 사들고 오면서 기분이 너무 좋다.
친정집 팔판동 한옥 마당에 있던 살구나무가 떠오른다. 봄에 꽃 필때 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면 살구향이 그윽하게 느껴져 좋았다.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렸던 적은 없어도 해마다 열매를 따먹었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알이 크고 달았다.
살구는 좋아했지만 나무에 벌레가 많이 생긴다고 어머니는 걱정을 하셨다. 살구나무가 커지니 옆집 아저씨는 자기집 지붕 위로 벌레니 낙엽이니 자꾸 떨어져 지저분하다며 그쪽으로 벋은 가지를 자르겠다고 톱을 들고 나타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무는 남쪽을 좋아해서 자꾸 그집 지붕쪽으로만 계속 가지를 벋어갔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정원사를 불렀다고 하셨다. 트럭에 크고작은 바위돌을 가득 싣고 온 정원사는 살구나무부터 뽑아버리더니 가져온 바위들을 이리저리 멋있게 배열해놓으며 며칠간 공사를 했다.
대문쪽 마당에 포도넝쿨을 올리고 한쪽에는 철쭉이 만발하고 바위사이로 겨울에도 안죽는 화초를 심는등 사철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뀐 것은 좋으나 내 마음 한켠에는 항상 살구나무가 살아있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살구철이면 시어도 달아도 항상 살구를 사먹는다. 시다고 식구들이 안먹으면 설탕에 재워서라도 나혼자 두고두고 먹는다
그런데 올해는 성공. 오랜만에 날씨가 가물어서 열매들이 모두 달다고 한다. 가뭄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지만 설탕에 재운것보다 더 달고 즙많은 살구가 나왔으니 나혼자서는 행복하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