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내집에 가고싶다

이예경 2014. 5. 11. 23:38

내집에 가고싶다
 이예경 54  | 2003·05·06 23:52 |
잠결에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다. 병원에서 간병중인 시어머님이 아버님이 위중하니 당장 병원에 오라고 한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버님이 큰며느리인 나를 손짓해 부르며 할말이 있다고 하신다. 집에 가서 조용히 쉬고 싶으니 당장 119를 불러 달라는 말씀이다. “문제의 담석증 치료는 끝났는데도, 폐가 약하고 방광에 혹이 있다면서 붙잡아놓고, 아침 저녁으로 주사니 채혈이니 들볶여 지긋지긋하다. 병원에서는 생체실험을 하는 것 일뿐, 구순을 바라보는 노쇠한 몸에 그런다고 달라지겠느냐”고 하신다.

나는 아버님의 뜻을 십분 이해했다. 그러나 담당의사는 펄쩍 뛰면서 “그러다간 귀가 길에 돌아가실 수도 있으며,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니 사흘정도 더 있어보라”고 한다. 설득하러 온 담당의사에게 아버님은 “안락사를 시켜주든지 퇴원서류에 싸인을 해주든지 하라” 고 호통을 치셨다. 그리고는 내게 "의사도 믿지 말고 간호사도 믿지 마. 난 집에 가겠어. 내 자리에 누워 쉬고 싶어. 내 소원을 꼭 들어줘. 가는 길에 죽어도 난 여한이 없어." 하신다. 아버님은 당신의 평소 자리로 가고싶은 것이다. 나는 어찌해서라도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간곡한 주장에 의사도 결국 “환자의 뜻이 워낙 완강하니 퇴원을 허락해 주겠다” 고 한다. 나는 간병인을 구해서 시댁으로 가면 한동안 거기서 머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어머님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며 큰아들 집에 모셔가라 한다. 막내 시동생도 거들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고 퇴원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 맏아들인 남편은 아버님 생각에 동의는 하지만, 일단 사형제가 만나 의논을 하는 게 급선무이고, 저녁에 모두 만나기로 했으니 일단 퇴원을 미루라고 했다. 유럽에서 오는 둘째의 공항도착시간이 오후 3시이니 이해는 가지만,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 열이 오른다. 모두들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사람들 같다.

아버님은 옆에 있는 큰며느리를 수시로 부르며, 언제 집에 가는 거냐고 다그쳐보아도 퇴원준비의 기색이 없자, 작전을 바꾸셨나 보다. 간호사가 얼씬도 못하게 호통을 치더니, 산소마스크를 잡아떼고 이줄 저줄 다 잡아당겨 흔들면서 사뭇 결사적으로 난동을 피운다. 식구들이 달려들어 말리고 달래고하여 얼마 후 진정은 되었지만, 아버님의 심중을 이해하는 내 마음은 터질 것만 같다. 아버님께서는 매사에 독자적으로 꼿꼿하게 잘 사시던 분이었는데, 자신이 자신의 주인 노릇을 못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을 지켜드리지 못하니 죄송한 마음 뿐이다.

점심 때 병원에서 야채죽을 가져 왔다. 평온을 되찾은 아버님은 틀니를 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내가 떠먹여드리는 죽을 오물오물 잘 받아 잡수신다. 옛날 팥죽 이야기를 하며 잡수시는 모습이 귀여운 아기 모습이다. 기저귀까지 차셨으니 아기 같은 점이 많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 어른이 되지만 결국에는 다시 아기같이 살다가 가게 되나 보다. 음식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까지도 그렇지 않나 싶다. 식사가 끝나니 손주들이 몰려와 눕혀드리고 뽀뽀를 해드리고 발을 주무르고 이야기를 하며 재롱을 떨었다.

입원해 계신 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는데, 그 중에 이상한 일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꿈을 꾸고 놀래서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그이는 오자마자 아버님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문턱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가 보다.

사람들은 운명 전의 조짐을 여러가지로 말해주었는데,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왔다, 밖에 누가 왔다며 자꾸 나가보라고 하고, 그렇게도 깔끔하시던 분이 어느날 똥을 싸서 침대며 온 방을 똥밭으로 만든다 한다. 몸에 욕창이 나고 약이 듣지 않으며, 집에 가겠다고 우기는데, 사뭇 결사적이다. 못 드시던 분이 갑자기 식사를 한번 잘 잡수시는데 먼 길을 떠나는 준비라 한다.

형제들은 아버님의 귀가문제, 숨이 다할 시 기계호흡을 하는 여부, 간병인을 쓰는 문제, 임종 후 화장 또는 매장의 선택문제 등의 의견을 나누었다.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장남인 남편은 형제간의 화합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상기시켰다.

이제 보니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못지않게 이세상을 떠나는 과정도 간단치가 않다. 주위의 정 붙였던 모든 인간과 사물...모든 것들과의 분리 과정은 새 생명이 태어나 하나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 만큼이나 새삼스럽다. 그 과정 어느 하나 건너 뛰는 게 없이 누구나 같으니 이렇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다. 부자든 거지든 한번 태어나 한번 죽고, 알몸으로 태어나 베옷 한 벌 입고 간다.

아버님은 그날 저녁에 중환자실로 가셨다. 그날의 식사가 마지막 식사였던 셈이다. 의사는 “최선을 다 할꺼냐” 고 묻더니, 숨이 멈추면 기계로 인공호흡을 시켜드린다는 동의서를 내놓았다. 자연스럽지 않다고 남편이 난색을 표하자 막내동생은 그게 최선이냐 울부짖으며 끝내 인공호흡을 고집했다. 의사는 인공호흡을 유도하는 중에 갈비뼈에 금이 갈수도 있다는 동의서까지 가져와 막내의 싸인을 받아갔다.

졸릴 때 누가 조금만 흔들어도 짜증이 나는데, 영원한 잠으로 고요히 빠져들려는 아버님을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험하게 기계호흡을 시켜야 효도하는 것인가. 그게 최선인가. 아버님이 좋아 하실까. 본인이면 그러고 싶을까.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아버님을 뵈러 갔다. 사지가 침대난간에 단단이 묶여있고 코와 입에는 줄이 달린 큼직한 마스크가 덮여있고 큼직한 기계가 옆에 있다. 인공호흡으로 지친 아버님과는 의사소통도 어렵고 이젠 누가 보아도 생기를 잃은 모습이다. 자주 문병을 오셨던 목사님이 말씀을 잃은 듯 기도 말씀도 못하신다. 식구들도 망연자실, 아무도 말이 안 나온다.

의사는 최선을 다 하려면 심장이 멎었을 때 심장 맛사지를 해 줄 수 있다고 또 동의서를 가져왔다.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다같이 막내동생을 쳐다 보았다. 막내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로 젓는다. 모두가 안도의 표정이다.

의사가 말한 사흘째 되는 날, 아버님은 심근경색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세상에서의 고통이 끝나고 자유를 찾은 아버님은 당신께서 살던 집에 제일 먼저 가보실 것이다. 형제들의 우애에 금이 가지않고 잘 지나간 것은 좋으나 아버님의 소원대로 집에 가서 당신의 자리에서 평안 속에 임종을 하시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젠 아버님의 집은 인간으로 살던 집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영원한 집이 있으며, 거기서 오셨었고, 이세상의 여행이 끝나 다시 거기로 가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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