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시 산책

11월에

이예경 2012. 11. 19. 01:00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 파블로 네루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그저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것과
이 땅에 살고 있음에 대해 건배.



우리의 삶이 사위어가면
그땐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증오처럼 차겠지.

그땐 우리 껍데기를,
손톱을, 피를, 눈길을 바꾸자구나.
네가 내게 입맞추면 난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빛을 팔리라.

밤과 낮을 위해
그리고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사진 : 김시운 (51회)

이경순(51) :
11/17 23:32


11 월
- 헤르만 헤세

지금 만물은 퇴색하려 한다.
안개낀 나날이 불안과 걱정을 낳는다.
폭풍우의 밤이 가고 아침이 오면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이별이 울고,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너도 죽음에 의탁하는 것을 배우리니
죽을 줄 아는 것은 신성한 지혜로다.

죽음을 예비하라.
그러면
죽음에 이끌려 가면서도
보다 높은 삶으로 들어갈 수 있노니.


사진 : 김시운
이경순(51) :
11/17 23:40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을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는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사진 : 김시운
이경순(51) :
11/18 00:07


늦 가 을
- 도 종 환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사진 : 김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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