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추석행사를 일주일 전에 치룬 덕에
이번에는 처음으로 친정에서 추석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며칠전에 요양병원에서 아버지가 집으로 외출 나오셔서 계시는 데다
카나다에 사는 넷째동생이 추석 1주일 전에 한국으로 출장을 나왔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석 전날 아침 일찍 서둘러 9시에 친정에 도착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고 음식도 장만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방 근처가 소란해서 들어가보니
다섯째동생과 그 신랑과 어머니가 합동으로 아버지를 침대에서 일으켜
휠체어로 앉혀드린 다음 화장실로 모셔가서 좌변기에 앉혀드리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키가 183에다 체격이 우람하신 분이라
여럿이 달려들어도 이동시켜드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변기에 한참 앉아 계셨지만 된장공장은 가동을 전혀 안하고
어머니는 목욕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욕을 시키려면 또 여럿이 힘을 모아 아버지를 욕조에 넣어드려야한다
씻기는 일은 그중 쉬운 일이고 씻기고 나서 욕조에서 꺼내려면
물에 젖은 미끈한 몸을 완전 두레박 당기듯 들어올려야하니 훨신 더 힘들다
장을 보고 뭘 하는데 정신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를 침대에 눕혀드리고
옷을 입혀드리고 기저귀를 채워드리고 나니 힘드셨는지
아버지께서 코를 드렁드렁 골으시며 잠이 드셨다
그로키 상태가 된 식구들도 각자 방으로 가서 드러누웠다
나는 작년 9월까지는 이런 일에 같이 나서서 돕고 헤메었지만
지금은 수술환자이다보니 힘도 못쓰고 옆방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들락날락하며 괜히 알짱거리는게 미안하다
장도 새로 못보고 냉장고에 있는 걸로 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은 빨리 가서 야채를 다듬다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상을 차려드리는데 아버지 치아가 부실하시니
반찬을 있는대로 다 꺼내어 다져서 여러개의 종지에 나누어 담았다
이제 아버지를 안방에서 식탁까지 이동해드리는게 또 큰일이라
식사를 침실로 가져다 드리자고 하니 어머니가 펄쩍 뛰신다
힘들어도 온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야 한다고 말이다
기운을 하나도 못쓰시는 아버지를 깨워 옷을 갈아입히고
휠체어에 다시 앉혀서 식탁까지 8 미터를 모시고 오는데 15분도 더 걸렸다
아버지 숟갈 위에 반찬을 놓아드리고 식사시중을 든다
치아가 부실하니 식사를 40분간 하신것 같다
거동이 불편하시니 세월아 네월아 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는 5박6일 예정으로 집에 오셨는데
이틀밤을 지내시더니 식구들이 힘든것 같으니 병원에 돌아가시겠다고
자꾸만 가방을 싸라고 하시는데 교통도 밀리지만 추석도 안지내고 가실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튼 나는 친정식구들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커녕
아버지 시중에 모두들 초비상 상태라서 그렇게 저녁내내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모여서 추석 및 추도예배를 드렸다
예배순서와 찬송가를 어머니가 모두 준비를 해놓으셔서
내가 그걸 참고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찬송가를 같이 부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부모님 가신 후에는 계속 육자매의 맏딸인 내가 예배를 인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도 오랜만에 여럿이 모여 옛날 추억담을 나누며 아침을 같이 보내니 흐뭇하였다
계속 아버지 시중을 들다가 점심 후에 내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를 뵈러 오겠다고 했으나
외할머니가 너무 힘들다고 오지 말라고 하였기에
저녁에 딸과 사위가 손녀딸을 데리고 내집으로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예정과 달라져서 청소, 음식 상태가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오지말랠 수는 없는 일.
전에는 100인분을 차리느라 힘들었는데 주부9단인 내게 셋 정도야 일도 아니지
그런데 남편은 식혜와 수정과도 없이 성의없게 사위를 맞을 수는 없다고
오지말게 하라고 그러는 거다.....난감해서 딸한테 의논 전화를 해보았다
딸은 만복감으로 소화제를 먹어야할 판인데 걱정말라고 무조건 오겠다고 하였다
저녁상은 막내딸과 부지런이 장만해서 그런대로 차렸는데
사위가 생선회까지 장만해와서 화이트와인을 기울이며
조촐한 저녁과 여유스런 대화로 포근하고 즐거운 저녁이 되었다
피아노를 배운지 2년 남짓 외손녀의 피아노독주에 과장 섞인 감탄과 박수를 보내며
서른살 이모한테 소니티네를 가르쳐준다며 선생님노릇하는 손녀딸이 구엽고
청음으로 따라치며 맞장구를 잘치는 막내딸도 재미있다
손녀가 환호하면 우리 모두는 더 신이 난다
이번 추석에는 변수가 많아 본의아니게 전과는 영 다르게 지나갔다
오겠다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환자를 모시고 치루는 행사가 전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살다보니 해마다 추석의 색갈이 여러가지로 변해간다
추석이 별건가요
오랜만에 온 가족들 만나서 같이 밥먹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나누고
밀렸던 얘기들 나누고, 즐겁게 헤어지면 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