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9/17 아버지 얼굴이 해바라기꽃이 될때

이예경 2010. 10. 1. 18:18

성묘를 끝내고 내친김에 아버지 병원에 갔다

산소에서 남양주 병원까지 제법 멀지만

완이가 애쓰고 두시간 운전해준 덕분에

차안에서 얘기 나누며 갔다

 

도착해보니 4시. 아버지 운동도 끝나셨을 시간이다

내가 엄마랑 아래층 화장실에 들린사이에

발빠른 4,5학년 동생 둘이서 어느새 병실로 올라갔나보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보니 동생들이 왜 벌써 왔느냐고

아래층에서 기다리지 그랬느냐고 한다

"서프라이즈" 할려고 아버지께는 둘이서 왔다고 말씀드린 참이란다

엄마가 안오셨다고 시무룩하시거 같더라했다

 

그런참에도 엄마를 보시자마자 얼굴이 활짝 해바라기같이 웃으신다

딸여섯 합해도 엄마 하나만 못한가보다

두분이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뜻.

 

아래층 휴게실은 넓고 천정이 아주 높고 소파가 제법많아 50명은 앉을 수 있겠다

한쪽에는 눕기만하면 전기로 맛사지 해주는 의자도 두개 있다

저번 주에는 부모님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안마 받았던 곳이다

 

아버지께 저마다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드렸다

완이는 아버지 안마를 해드리는데 맛사지는 대충하고

스트레치 한다며 아버지 팔을 한짝씩 잡아 당겨 늘이고 흔들고....

아버지께서는 으하하 하시며 아프다고 하신다

 

완이는 똑같이 무자비?하게 계속 잡아 늘이고

그렇게 계속 해드리니 "컬컬컬" 웃음을 멈추지 못하신다

그러면서도 시원하신지 계속 해드리길 바라신다

우리는 옆에서 오랜만에 웃으시는 아버지를 보고 같이 웃음이 난다

 

완이가 아버지 안마를 끝내고 옆에 앉자 

조용히 꼼짝도 않고 있던 복경이가 슬며시 일어나더니

완이 팔을 잡아 당기며 안마하고 스트레치 하기 시작했다

완이가 운전을 세시간이나 했으니 풀어줄려고 그러나보다

역시 속깊은 언니로서의 착한 생각이다

 

그런데 완이는 아야아야 아퍼아퍼 하면서 몸을 비튼다

잘보니 복기는 완이가 아버지 해드린거와 순서까지 똑같이 하고 있다

완이는 아프다면서 "아버지를 다음엔 좀 살살해드려야겠다" 하는 후회성 발언

복기는 입 꼭 다물고 막무가내로 계속 스트레치안마를 계속한다

 

완이는 계속 아프다고 신음하고

이 모습을 보신 아버지는 우스워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컬컬컬이 아니고 아하하 어허허 웃음을 그치지 못하신다

완이와 복기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엄마랑 나도 데굴데굴 구를 지경이다

한달이상 웃을걸 한번에 다 웃은 것 같다

 

복기는 메이크업 배운거 완이랑 나한테 봉사해서

완죤 딴 얼굴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완이는 귀염성스런 똑순이 아가씨 모습이 되었고

나는 미국이민권자 전문직여성으로 변했다나....

아버지는 내게 둘이서만 재미있게 노냐고 하시며 웃으셨다

 

증명사진을 박아놨어야하는데....

딴거 챙기다 카메라를 못 가져간 게 옥의 티였다

아버지는 정말 많이 웃으셨다

아버지웃음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진다

 

아버지께선 새벽에 꿈을 꾸셨는데 팔판동 집에서

육자매가 교복입고 왔다갔다 하던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다

........그때가 바쁘고 힘들면서도 행복한 시절이셨나보다

 

그 말씀 하시는 표정이 너무나 밝고 빛이 나셨다

당시에는 육자매 키우느라 부모님이 참 바쁘셨을터인데

지나고보니 인생의 한창때였다고 생각되시나보다

 

우리도 시집가기 전에는 인생의 봄이었던 것 같고

결혼해서 애들 키우고 집칸 늘이고 돈모을 때가 여름이었나보다

애들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 얻으면서 가을이고

퇴직하고 회갑 칠순 보내고 단풍이 들면서

한잎두잎 떨어지는 낙엽같이 건강도 쇠하고 겨울로 접어드는 거겠지

 

겨울이 지나 내자신은 세상을 떠난다해도

땅속 어딘가에서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나면 부활...

그때는 나 아닌 다른 생명이겠지만

그렇게 세상은 돌고도는 것이리라....

 

내가 닥친 어느시점에서 충분히 즐기며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에 돌아오니 내집에 세간살이들이 많기도 하다

.......부질없이 느껴지고...... 이젠 버릴거는 팍팍 버리면서

단출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완이가 빨리 피곤이 풀리기를 바란다

운전을 정말 많이 했지

고맙다

 

추석날 오후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