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흐름과 생성
마음을 치료하는 사혈요법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마음의 생성까지 좀 깊이 있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스트레스를 한번 보죠.
스트레스는 몸을 경직시키고 혈관을 수축시켜 피의 흐름에 직접 장애를 주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장기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어혈을 만들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살려면 자신의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마음을 키운다는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 시야를 넓힌다는 말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마음이 놓아 주지를 않으니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살려면 마음이란 놈의 생성, 흐름.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대단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실체와 흐름을 아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다들 마음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모르는 것이죠. 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며 살 수 있는 지혜와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풀이를 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 같군요.
1. 적응적 영성 : 기후. 환경. 공동체의 삶을 통해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 곳에 잘 적응하는 방법을 알아채는 성격. 즉 마음을 말합니다.
2. 적응적 진화 : 기후. 환경. 공동체 삶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알아챈 마음이, 그곳에 맞게 적응.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3. 공생원칙의 영성 : 인간을 포함한 동물. 식물. 곤충. 등 지구상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공존하며 서로 역할 분담을 통하여 더불어 살 수 있는 조건의 법(자연의 법칙. 진리. 이치. 상식. 원의 이치)입니다.
4. 약육강식의 영성 : 사물의 이치를 보지 못하고 나만을 의식한 채 그 생각이 전부인줄 아는 (무지, 아집. 이기심. 편견. 욕망의 마음)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아봅시다.
마음의 본체인 영성 (성격)은 전파 같은 성질의 세계입니다. 한 몸 속에는 음과 양의 두 마음과 중성인 의식의 마음이 존재하면서 끝없는 다툼을 하며 육신을 지배하려 합니다. 한 몸 속에 하나의 마음(성질)만 있다면 우리는 정신적 갈등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 몸 속에는 세 가지 성질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 세 가지 마음이 생성되는 이치를 알아야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과 평화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쉽게 표현해 보죠.
- 세 가지 성질의 마음 -
1. 공생 원칙의 마음 : 양심의 마음(양)
2. 약육강식의 마음 : 이기심, 욕망의 마음(음)
3. 음도 양도 아닌 중성의 마음 : 나의 본체, 무
그럼 이 세 가지 마음이 어떠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생성이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1. 공생원칙의 마음(양) :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적응적 진화를 할 때는 먹이사슬의 연결고리로 상호보완적인 삶으로 진화를 했습니다. 마치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먹이로 미생물이 번식해서 살고, 그 미생물이 육신을 갉아먹고 배설을 하면 그 배설물을 먹고 살 수 있는 식물이 번식을 하고, 이러면 그 식물을 먹이로 할 수 있는 곤충, 동물이 번식을 하고 하는 식으로 먹이 사슬의 연결고리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안에는 상호보완적이지 않는 삶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인 내 앞 단계인 먹이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존재할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상호 보완하며 공생의 삶을 유지하는 생명체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자연 도태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생 역할 분담을 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의 법이 자연의 법인데 여기에서 도출된 공생원칙의 영성이(양) 양심의 마음입니다.
2. 약육강식의 마음(음) : 인간이 하나의 작은 미생물에서 적응적 진화를 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깨우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한 깨우침이기에 이것을 이기심, 욕망의 마음이라 표현합니다.
삶의 이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 하나만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깨우친 거라 이마음의 표출이 강하면 공생의 삶을 사는 현실에서는 멸시의 대상, 외면 받는 대상이 되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3. 양도 음도 아닌 중성의 마음 : 중성의 마음이란 나 자신의 본체 의식을 말합니다. 의식은 공이기에 스스로 노력하여 키우지 않으면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양의 마음이든 음의 마음이든 유혹하는 대로 바라만 보고 있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살려면 나 자신의 본체인 의식의 마음을 키워 그것이 의도한 생각만을 하고 행동에 옮겨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명석하다 하여 머리를 자연의 법인 순리, 진리, 이치를 거스르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연의 법인 진리를 어기면 자연은 그것이 틀렸다는 증거로 어긴 만큼 자신에게 되돌려 줍니다. 이것을 인과응보라고 합니다.
공생 원칙의 삶을 이치로 풀어 보면 우리가 공동운명체로 서로 역할 분담을 하며 사는 이치나, 한 몸 속의 8조 마리나 되는 작은 생명체들이 역할 분담을 하며 공생을 하는 이치나 모두 동일합니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자비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의 이치를 모르고서는 이 마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면 의식의 마음을 키워 그것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이란 놈은 음의 마음이든 양의 마음이든 물질이 없는 전파 같은 성질의 세계이기에, 육신은 여기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저 혼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떠돕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마음은 의식의 마음만이 내 몸 안에 붙들어 놓을 수 있고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의식의 마음은 키우지 않으면 다스릴 힘이 없습니다. 이 의식의 마음을 키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수행인데 나의 경험상 관찰 수행인 위빠싸나 수행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체 중 끊임없이 계속 움직이고, 관찰하기에 제일 편한 곳이 배의 움직임입니다. 조용히 편안한 자세로 않아 배가 들어가고 나옴을 끊임없이 관찰하여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갈 틈을 주지 않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시간이 나는 대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의식의 마음이 커지고 습관이 되어 의식의 몸 바깥을 떠돌지 않고 늘 몸을 관찰하기에 순간순간 들어오는 망상을 제어할 능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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