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시 산책

소를 때리지 말아라 -이규보

이예경 2009. 12. 31. 18:07

소를 때리지 말아라
불쌍하구나.
아무리 네 집 소라고 해서
때려야만 되겠느냐?
소가 네게 무슨 짐이 된다고
도리어 소에게 화를 내느냐.
무거운 짐을 지고서
만리 길을 가기도 하니,
너 대신 두 어깨가 피곤하단다.
혀를 헐떡거리며 큰 밭을 갈아주어
너의 입과 배를 모두 즐기게 해주었네.
이만큼이나 너를
정성껏 섬겨주었는데도,
너는 게다가
타고 다니기까지 하는구나.
피리를 입에 물고
너는 스스로 즐기지만,
소는 가뜩이나 지쳐서
걸음걸이도 처지는 구나.
걸음이 늦다고 게다가 성까지 내서,
회초릴 들어 때린 것이 여러 번일세.
얘야, 때리지 말아라.
소가 가엾구나.
하루아침에 소가 죽으면
네게 무엇이 남겠니?
소 먹이는 아이야,
너는 참말 어리석구나.
무쇠로 만든 소가 아닌데
어찌 더 견디어 내겠느냐?

- 이규보

*이규보(1168~1241) : 고려시대 문신, 문장가. 1190년 문과급제. 권보직한림으로 발탁(1207), 위도에 유배(1220) 벼슬에서 물러남(1224). 작품집에 '동명왕편' '국선생전'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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