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세 뱃 값 / 유두영

이예경 2009. 8. 19. 21:31

세 뱃 값

 

                                                                                             柳斗永

 해마다 설날 아침이면 우리 집은 세배하고 세배받고 하느라 한참을 분주하게 보낸다.

구정을 폐지시키고 신정을 강요하던 시절에도 보수성이 강한 나는, 다른 생활은 다 양력에 의거하면서도 설날만은 음력을 고수했다. 그러나 그 때 어른들은 직장에 나가야 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했으니, 설날 행사라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차례를 모시고 나서 허둥허둥 아이들의 세배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신정 과세를 해야겠다고들 했고, 신정 과세를 하는 집에서는 그런대로 우리 고유의 설날 행사들을 하느라고 했지만, 그 행사는 어딘지 모르게 설익은 과일처럼 제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저래 우리 고유의 설날 행사들은 빛을 잃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우리 고유의 설날 풍습들이 영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던 중, 어느 때 그 우려는 기우(杞憂)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부에서 음력 설날을 민속명절로 지정함으로써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래서 갖가지 설날 풍습들이 활기차게 되살아났다. 고유의 설날 행사와 놀이들이 많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세배를 가장 뜻있는 행사로 꼽는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건강하고 장수하라는 인사를 드리는 일이요, 세배를 받은 윗사람이 세배한 아랫사람에게 소원을 성취하라는 덕담을 해 주는 미풍양속이다. 그래서 다른 집에서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설날 아침이면 설날의 행사를 세배로부터 시작한다.

차례도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드리는 세배이거니와, 차례상을 물리고는 곧바로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친족과 가족들이 세배를 하고 그것을 받는 일로 분주하다. 먼저 같이 늙어가는 아우와 서로 건강을 당부하는 인사를 나눈다. 그러고는 아들들과 조카들, 자부들과 질부들의 세배를 차례로 받고 나면, 이번에는 손자들과 손녀들이 우르르 모여 온다. 그들의 세배가 끝나고 물러가면, 건넛방에서는 아들 조카들이 저들 형제끼리, 그리고 저들의 아들과 딸들의 세배를 받느라 어수선해진다.

그런데 성인인 아들 조카들의 세뱃값은 덕담으로 치르고 말지만, 손자 손녀들의 세뱃값은 반드시 현금으로 치러야 한다. 그들의 세배는 새해 인사의 뜻이기보다는 오히려 세뱃값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좀 큰놈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얼마가 나올 것인가 눈치를 살피고, 어린놈 중에는 아예 절하기 전에 얼마를 주려느냐고 따지면서 응석을 부리는 놈도 있다. 이것은 확실히 미풍양속이라는 옥에 한 점 흠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소년 시절에는 동네 어른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면, 그가 성인인 경우에는 세주 한 잔 대접받는 것이 세뱃값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기특하다고 해서 차례상에 올렸던 곶감, 대추, 밤, 유과 따위를 한 움큼씩 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이 세뱃값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현찰로 바뀌어 동전 한 닢씩을 쥐어 주었고, 현찰이 점점 자라서 돈이 흔해진 지금은 희떠운 사람은 서슴없이 고액권을 아이들에게 꺼내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한다.

세배는 말할 나위 없는 미풍양속이거니와, 이 미풍양속으로 해서 난처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친척 집 어른이나 동네 노인은 마땅히 찾아뵙고 세배를 드려야 도리이거늘, 세배를 드리러 가서 세배를 드리고 나면, 그 집에 모인 그 집 친족들의 아이들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세배들을 한다. 그러니 가기 전에 그들에게 치를 상당한 액수의 세뱃값을 마련해 가지고 가야 한다.

노인이 있는 집에서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는 그가 친척 어른 또는 동네 어른이니 세배를 시키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자니 상대에게 적지 않은 세뱃값을 물리는 부담을 주게 된다. 아이들은 세배를 돈 생기는 일로 알고 하는데, 상대에게 세뱃값은 주지 말고 절만 받으라고 하는 것도 예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금년 설날에도 후배인 K씨가 세배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세배라기보다 정초에 함께 세주상을 사이에 두고 덕담을 나누러 온 것이다. 그를 본 손자 손녀들이 그에게 세배를 하려고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눈짓을 해서 아이들을 그대로 나가게 했다. 그것은 그에게 세배를 시키기 싫어서가 아니라 요즘의 그의 형편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드문드문 찾아오지만, 설날에는 어김없이 찾아와서 우리 아이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고액의 세뱃값을 아낌없이 뿌리고 가는, 좀 호기를 부리는 성품이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그의 직장 형편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로서는 해마다 세배를 드리던, 할아버지의 후배이니 마땅히 세배를 해야 할 분으로 알고 들어온 것이요, 또 고액 세뱃값의 벌이자리로 여겼던 것인데, 할아버지가 그냥 나가라고 하니 나가기는 하면서도 서운하게들 여겼을 것이고, 후배는 후배대로 아이들에게 세배를 시키지 않는 나에게 대해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는 나간 아이들을 모두 불러들여 자청해서 세배를 받고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에 따라 고액의 세뱃값을 시원스럽게 뿌렸다. 그는 어려운 형편이건만 우리 아이들에게 줄 세뱃값을 마련해 왔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많은 지출을 민망하게 생각했다.

귀여운 어린이의 새배를 받고 나서 그에게 세뱃값을 주는 것이 미풍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액수가 고액화해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악풍으로 전락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귀여운 어린이에게 돈을 주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뱃값으로 많은 돈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주고 싶으면 세뱃값은 세뱃값대로 주고 나서, 많은 돈은 따로 다른 명목으로 주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성을 띤 규정에 의해 규제할 수는 없다. 각자가 자각해서 할 일이니, 그런 캠페인이라도 활발하게 벌이는 것이 어떨까.

'명 수필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넘가? / 박유정  (0) 2009.12.01
교통순경과 욕심꾸러기/ 장영희  (0) 2009.09.07
환동, 풍경, 이미지/ 김영만  (0) 2009.08.19
자아와 메타자아/ 김영만  (0) 2009.08.19
딸 / 김영만  (0) 200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