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모르는 문제
부모님께서 연로하셔서 병원 출입이 잦아지고 있다. 팔순이신 어머니는 건강을 염려해서 툭하면 검진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봄에는 뜻밖에도 대장에서 혹을 발견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는 악성이라 수술이 급하다면서 빨리 입원을 하라고 하였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느냐 하니, 의사는 더 말해봤자 험한 소리 밖에 나올게 없다면서 설명은커녕 무식쟁이 취급을 한다.
인터넷 검색에서 보니 대체로 양방 의사의 말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동네 한의사는 혹을 없앨 수는 없고 작아지거나 자라지 않게 할 수는 있다며, 그래도 천수는 누리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수술은 잘 되어도 항암 치료를 이기지 못해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수술을 안 하고 시골에서 민간요법으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잘 지내는 사람도 있다. 선택은 자유지만 최선은 있어도 정답은 없나보다.
늦깎이 화가이신 어머니는 개인전을 계획 중이었고, 그래서 앞으로 작품을 더 만들어야하므로 이렇게 그냥 갈 수는 없다며, 뇌고 또 되뇌이신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일단 정밀 검사나 해보겠다고 하였다. 병원에서는 며칠 동안 음식을 끊고서 각종 검사를 하면서 빈혈이면 수혈해주고, 기운이 떨어지면 링거 맞히고 다시 M.R.I 촬영을 하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도마 위의 생선 같다고 하신다. 열흘 동안 검사만 받으시더니 체중이 5키로나 줄어서 이제는 누가 보아도 환자 행색이 되었다.
한의사는 혹이 작아지게 해주겠다하고 양방 의사는 혹을 없애주겠다고 하므로 기력이 떨어진 어머니는 마침내 수술에 동의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사인을 하라고 내게 내미는 수술 동의서를 보니 내용이 심상찮다. 수술 후에는 전신마취 후 생긴 피떡이 뇌혈관을 막아 갑자기 치매가 올 수 있고, 수분조절이 안되어 내내 기저귀차고 다니는 수도 있고, 췌장이나 소장으로 전이가 되면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 겁나는 내용뿐이지만 수술의 진행을 위해서는 사인을 안 할 수도 없다.
수술 당일, 그렇게도 초연했던 어머니 얼굴이 수술실 입구를 지나며 순간 공포로 굳어진다. 나 또한 가슴이 조여오고 현기증이 났다. 어머니만 들어가신 미닫이가 닫히고 수술실 저쪽이 마치 컴컴한 저승같이 느껴지며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온전하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기도 밖에 할 게 없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딸들은 별의별 불길한 생각이 다 떠올라 손수건을 놓지 못하고, 사위들은 짐을 들고 옆에 앉아 눈만 끔뻑끔뻑, 말을 못한다.
다섯시간 후, 중환자 대기실에서 만난 어머니는 사지가 묶여 의식도 없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계셨다. 온 몸에 콧줄과 오줌줄에 약병을 여러 개 매달고, 배에는 피주머니를 두개나 달고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불러도 눈은 감은 채 눈동자만 움직이니 웬지 낯설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의사는 대장에서 자두 만 한 종양을 떼어냈고, 암세포가 간장에도 전이되어 수술시간이 길어졌다고 알려준다. 면회허용시간 30분이 어느새 지나갔다.
입원하신 동안, 외국에 사는 딸 셋이 귀국했고 한국의 딸 셋과 교대로 병실을 지키며 날짜가 지나갔다. 시간도 약인지 어머니는 고혈압이 진정되면서 종잇장같이 허옇던 손바닥도 차츰 붉은 기가 보이고 목소리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약병이 하나씩 떼어지고, 식사가 미음에서 죽으로 바뀌게 된 날, 우리 모두는 어머니 밥상에 둘러서서 감격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수술하신 어머니 따라 누렇게 뜨셨던 아버지 안색도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퇴원 한 달 후, 김치를 잡수셔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의사의 손을 꼭 붙들고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며 항암 치료가 남았다고 한다. 팔십 노인에겐 필요 없다고 했었지만, 의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항암 치료 중에는 식욕을 잃고, 손발은 터지고 혈액이 초코렛 죽같이 변해갔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갈아 앉는 느낌이라며 일상생활조차 어려워한다. 전쟁에 이기려고 원자탄을 터뜨린 꼴이라 적군과 아군이 같이 죽어간다. 계속 이렇게 힘들어 어찌 지내나 걱정스럽지만 담당의사는 검사 후에 매번 정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여러 개월을 지내고 보니 해가 바뀌었다. 요즘은 외출도 하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그림도 그리시며 개인전 준비에 열심이라 겉보기엔 멀쩡하게 보인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제는 다 지나간 옛이야기 같다. 그래도 컨디션은 수술 전과 비교가 안 되게 피곤해하시므로 모두가 어머니께 몸을 아끼라고 노래를 하지만, 외출할 일이 생기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다 가봐야지” 하시며, 또 무리를 한다. 그러면서 요즘은 하루하루가 불안해서 생각 없이 막 산다고 하신다. 내 가슴이 철렁 한다. 짧고 굵게 사느냐 가늘고 길게 사느냐의 어느 쪽이 좋은지 정답을 모르겠다.
지난 주일에 생신잔치를 해드렸다. 죽을 목숨이 살아서 이렇게 생일도 맞이하고 선물로 제주도 여행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암 수술 후의 생신이라 기분이 다른가보다. 그러면서 요즘은 식사를 손수 차려서 드실 수 있게 아버지께 실습을 시키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또 가슴이 쿵! 한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는 줄 알았고 정답을 구하면서 살아왔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암 같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자주 만난다. 우리는 발등의 불을 끄듯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제때에 정답을 알기보다는 일이 저질러지고 한참 헤맨 후에야 정답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때로는 정답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뱃속 편하게 모두다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보면 해결이 안 된 채로 다른 세계로 가기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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