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쐐기 나방을 보내며/ 손광성

이예경 2009. 7. 10. 22:43

쐐기 나방을 보내며

                                                                                                                                손광성

 지난 해 늦가을이었다. 매화 분을 들여 놓는데 앙상한 가지 사이에 이상한 것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새알 같은데 크기는 강낭콩만하고 짙은 고동색에 희끄무레한 얼룩무늬까지 조심스럽게 나 있었다. 쐐기 집이 틀림없었다.

매일 물을 주면서도 보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잎사귀에 가려서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칼을 찾았다. 떼어 버릴 참이었다. 한참을 여기저기 뒤져 보았다. 하지만 찾고 있는 칼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귀찮은 생각도 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당장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것도 없지 싶어서였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 놈도 살자고 한 짓인데 그걸 기어이 떼어내야 직성이 풀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 그 좁은 통 속에 몸을 오그리고 있을 번데기에 대한 어린애 같은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번데기란 밖에서 월동을 하는 법인데 따뜻한 방에 들여 놓았다가 봄인 줄 알고 나오면 야단이었다. 나뭇잎 하나 없는 엄동에 녀석을 기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지 싶었다. 강아지처럼 우유를 먹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에다 화분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매화는 얼어야 핀다고 하지만, 영하 오 도를 넘으면 위험하다. 더구나 번데기 하나 때문에 해마다 즐기던 설중매를 포기해야 하다니 안 될 말이었다.

생각 끝에 화분을 들여 놓았다. 틈틈이 눈여겨보다가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도 늦지 않으리라.

몇 주가 그렇게 지나갔다.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녀석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년 겨울도 이상 난동인 모양이지?’ 아니, 녀석으로서는 처음 겪는 겨울인데 그런 비교가 있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란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니구먼.’ 아마 이쯤 생각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무튼 나는 화분에다 물을 줄 때도 늘 조심조심했다. 녀석의 숙면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어쩌다 물줄기가 잘못하여 녀석의 집에 쏟아질라치면 문이라도 열어젖치고 냅다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제기랄, 어떤 놈이야? 남의 집에 찬물 끼얹는 놈이!”

그때마다 나는 얼른 물줄기를 다른 데로 돌려 대곤 했다.

그렇게 조심하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정월 보름을 전후해서 백매는 가지마다 가득히 흰 꽃을 피웠다. 이만치 누워서 한쪽 눈을 지긋이 감고 문갑 위에 놓인 매 분을 보고 있으면 문득 나는 봄 언덕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자기 집이 온통 매화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조그만 통 속에서 그저 잠잠할 뿐이었다. 만약 나와 보았더라면 ‘아, 벌써 매화가!’ 하고 탄성을 질렀을 것인데, 애석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편에서 문을 두드려 불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럭저럭 겨울이 지나갔다. 사월 두 번째 주말에는 매화 분을 다시 베란다에 내다 놓을 수 있었다. 별 탈없이 겨울을 넘긴 것이 다행이었다. 얼마 후 배추꽃 흰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지만, 그때까지도 녀석에게서는 아무런 낌새도 느낄 수가 없었다. 때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신록도 지나고, 유월 중순부터는 장마철에 접어든다는 예보가 나오면서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방이 더워서 그만 곯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해서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잠잠할 수가 없었다. 잠시만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배겨 못 견딜 판인데 몇 달씩이나 그러고 있다니,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녀석의 그 수도승 같은 참을성에 그만 슬그머니 화가 났다.

‘쪼개 버려?’ 나는 몇 번이나 면도칼을 들고 녀석의 집 앞에 앉아 망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참았다. 이미 곯았다면 그래 봐야 소용 없는 일이고, 살아 있다면 공연히 애꿎은 한 목숨 죽이는 결과가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지난 6월 27일은 지자제 선거 투표일이었다. 일찍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번데기 집 위쪽이 좀 수상했다. 칼로 참외 꼭지를 베어 낸 듯이 반듯하게 뚜껑이 잘려 나간 것이 아닌가? 드디어 녀석이 오랜 칩거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아무튼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나는 매화나무 잎 사이를 뒤졌다. 그러자 작은 가지에 앉아 있는 나방이 눈에 띄었다. 크기는 손톱만한 것이 마치 조그만 갈색 비로드 리본같이 앙징스러웠다. 아침 햇빛에 눈이 부신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녀석의 집을 처음 발견한 것은 지난 11월 중순이었다. 그러니까 줄잡아도 일곱 달 동안이나 그 좁은 공간 속에다 자신을 구겨 넣은 채 잠을 잔 셈이었다. 아니, 조금씩 자기 성장을 진행시켜온 것이었다. 일곱 달 동안을, 그 캄캄한 깍지 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어떻게 견뎌 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바깥 기온마저 고르지 않은데 정해진 시간표에 한치 착오도 없이 맞춘 그 섭리가 그저 놀라웠다.

나는 이 대단한 녀석을 더 잘 보기 위해 돋보기를 가지려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녀석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몇 번인가 날개짓을 하다가 가지를 떠나 날아 올랐다. 잠깐 사이에 베란다의 난간을 넘어서더니 곧장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가볍게 날아가는 것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잠시 아릿해왔다. 일곱 달 동안이나 우리는 같은 방을 쓰던 사이였다. 오래 사귀던 친구를 보내는 그런 마음은 아니더라도 나는 녀석의 모습이 앞뜰 소나무에 가려서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일생이나마 잘 살다 가기를 빌면서.

이제 녀석은 어딘가에 가서 짝짓기를 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내 대추나무 잎을 갉아먹을 애벌레 알을 어디엔가 잔뜩 슬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애벌레들이 자라서는 내가 대추를 딸 때쯤이면 예리한 독침을 세워 가지고 틀림없이 나를 또 공격해 올 것이다. 하지만 녀석을 보내는 순간은 그런 끔찍스러운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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