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 밤 ]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어느 날 밤, 김 군을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작자 : 윤오영(尹五榮;1907∼1976)
형식 : 경수필, 서정 수필
성격 : 서정적, 향토적, 함축적, 질박적, 여백적인,
문체 : 압축미 있는 간결체 문장
구성 : 정물화에 비길 수 있는 정적 구도
주제 :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한 순간 우연히 이루어진 아름다운 인간의 정
출전 〈고독의 반추〉(1974)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어느 날 밤, 김 군을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노인과의 우연한 만남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노인과 짧은 대화를 나눔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노인이 주는 술을 마심
이윽고,
"살펴 가우."
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작별
내가 잠시 낙향해 있을 때 일 :
서술격 조사 '-이다'를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등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생략한 표현
나는 밖에서∼그대로 돌아섰다 :
김 군을 찾아간다고 갔으나 정작 만날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대문은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한지라, 그냥 돌아섰다.
웬 노인이 한 분∼보고 있었다 :
노인과 밝은 달빛, 곧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동화,
거기에 노인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배어 있으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
두 사람은 처음 대면하면서도 인사말을 나누지도 않고,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다는 뜻.
이것은 아름답고 신비한 달빛 앞에서 어떠한 속세의 언어도 필요없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기보다
달밤의 분위기와 노인의 인정에 취해 마셔 버렸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특히 '버렸다'는 말에 그런 뜻이 크게 함축되어 있다.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노인과 밝은 달빛이 하나의 자연으로 동화된 듯한 정경으로,
노인의 외로운 감정까지 촉발시킨다.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길이가 아주짧다. 또한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몹시 간단하다. 낙향하여 있던 어느 날 달밤, 친구를 찾아갔다가, 친구는 만나지 못하고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에 앉아 있던 노인을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농주 한 잔을 얻어 마시고는 집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신기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이나 이야기가 뒷전이고 ,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전체의 서정적 분위기이다. 시골의 밝은 달밤과 그 정적을 배경으로 노인의 인정과 외로움이 함께 배어나는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달빛이 밝게 비치는 어느 시골의 풍경을 배경으로 향토색과 서정성이 짙은 분위기를 간결하게 묘사한 수필로, 길이가 무척 짧은 이 작품은 응축미와 담백미(淡白美)가 돋보이는데, 특별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고 그냥 서정성이 배어 있는 분위기만 전달해 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그 세계에 잠겨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다.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情), 이 셋이 이 작품의 서정적 분위기와 주제를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마지막 문장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는 박두진의 '돌아오는 길'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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