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생신이 두 달 남았다. 음력이라 혹시 놓치게 될까봐 미리 동그라미를 쳐놓고도, 맏며느리인 나는 자꾸 달력을 보게된다. 이번에는 칠순이라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자면 네 형제가 서로 의논을 해야한다. 선물로 두 분의 정장을 지어드리고 여행 보내드리고 잔치도 치르자면, 예산을 충분히 잡아야할 것이다. 나랑 둘째는 더 부담하여 동생들의 부담을 가볍게 하려고 궁리중이다.
둘째네는 맞벌이부부여서 바쁜데도 집안 일을 미리미리 걱정해주고 항상 협조적인데 동서는 20여명의 음식장만이 번거로우니 5년 전의 아버님 칠순처럼 밖에서 치르자는 의견을 냈다. 막내는 외식이 좋겠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 지방에 사는 셋째에게도 물으니 요즘 청와대에서도 칼국수를 먹는다는데 호텔 부페가 당하냐면서 집에서 차리자고 한다.
나는 셋째의 의견이 건전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의견들이 제각각이라 난감하였다. 그래서 다시 둘째 네로 연락하여 서로의 뜻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외식 쪽으로 비중이 크므로, 형제들의 의견이 합일점을 못찾아서 최종 결정은 부모님께 맡기기로 하였다.
음식점 비용 때문에 대여섯 군데를 알아보니, 최고 150만원 가량이다. 게다가 토요일 예약은 3주전에 해야한다니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어머니께서는 오붓하게 가족끼리만 모일 수 있는 중국 요리집이 좋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되면 만찬비용만도 최하 일 백만원이 들어 예산을 늘려야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짰다. 분담금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으나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며칠 후 우체국에 가보니 셋째가 송금한 액수는 합의를 본 금액에서 모자랐다. 혹시나 하여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셋째에게 전화를 해보니 잘 못 알았다며 마저 부치겠다하더니 며칠이 지나도록 송금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무리하게 할 수가 없어서 예산을 다시 잡기로 했다.
어머니께 선물의논을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다. 선물계획과 기념여행에 대하여 말씀드렸더니, 여행이라면 국외냐고 관심을 보이신다. 작년에 타일랜드에 다녀오셨으므로 국내를 생각한다고 하였더니, 예산을 물으신다. 그리고 그런 것보다는 밍크코트를 봐 놓은 것이 있다고 하신다. 나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동생들의 반응은 가지가지였다. 그런 것을 원하시는 줄 몰랐다한다. 짐은 무겁지만 해드리는 것이 도리이고, 밍크가 사치품이 아니라는 등. . .결국 부모님이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 고마우니 해드리자고 합의가 되어 여행비 예산까지 송금해드렸다. 어머니는 친구 분이 잘 아는 모피상에 가보신다고 하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일 마친 듯 잊고 있을 때,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같은 교회 집사님이 밍크를 입고 다니기에 이야기했더니, 일년에 두어 번 밖에 입을 일이 없더라며, 모직 코트로 맞추고 목에나 밍크를 두르면 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범이 뭐라 하지 않더냐고 물으시면서, 급할 것 없으니 다음기회에 해도 된다고 하신다. 그러나 어머님의 심중을 아는 우리들은, 원하시는 밍크를 해드리기로 하였다.
생신 날이 되어 식구들이 다 모여 축하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는 막연하게 그리던 것을 정말로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시며, 코트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만족해 하였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연중행사 하나가 지나갔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매번 달라지는 것 없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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