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텔레비전에서는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의 피해 참상을 알리느라 연일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재난의 소식들은 깨어 기도하라는 외침 같기도 하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할일이 많아 정신이 매우 분주하였다. 다섯 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시어머님께서 한쪽다리가 갑자기 힘이 없다며 전화로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나는 서둘러 집에 와서 수지침과 뜸 도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시댁에 도착하니 밤 열시인데 어머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게는 “투투 타타”로 들려 알아들을 수가 없다. 평소에 카랑카랑하고 지엄하고 냉정하던 어머님이라 좀 이상했지만 며칠 쉬시면 나으려니 생각하고 같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12시까지 뜸을 떴다.
눈을 뜨니 6시다. 쿵! 소리에 가보니 어머니께서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으셨는데 일으키려하니 혼자 해본다고 뿌리치신다. 어머님은 한참 애를 쓰셨으나 결국 내가 타월에 앉혀 잡아당겨 안방까지 옮겨드렸다.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어머님을 부축하여 동네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며 의사는 소견서만 써준다. 어머님이 너무 무거워 결국 119구급차를 불러 다른 병원에 갈 수 있었는데 C.T.촬영 결과 뇌경색이 왔다고 한다.
예기치 못했던 일이라 앞이 캄캄해져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의사는 퇴원해도 82세 나이 때문에 여생을 휠체어에서 보낼 각오를 하라고 한다. 어제까지 멀쩡하시던 어머님이시었기에 너무나 황당하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씨도 더 어눌해지고 오른쪽 팔다리의 감각이 완전히 떠나갔다. 애기로 치면 생후 5개월 정도랄까, 도움 없이는 식사는 물론 앉지도 서지도 못하신다. 나으실 수 있을까? 일 개월 후 어머니는 어떤 상태가 될지 걱정이다. 이젠 혼자는 못 사실 것이다.
허리케인은 누구나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임에 틀림이 없으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가 언제 피해를 당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시어머님 몸에도 허리케인이 온 것이다. 잘잘못도 따져볼 수 없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어머니는 일생에 본분을 잘 지키셨다. 4남1녀 자손들을 잘 키우고 3년전에 영감님도 보내드리고 차츰 노쇠해가는 자연의 이치를 감당하시는 중일 것이다. 이웃들은 내게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어 떨어지듯 시어머님도 완성된 삶을 향해서 가시는 길이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뇌졸중은 오래 걸리는 병이라 이해하고 느긋하게 마음먹으라고도 한다.
6층 병실엔 주로 90세이상 할머니들이 계신다. 방마다 할머니들로 차있는데도 내 숨소리에 내가 놀랠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할머니들은 식사를 혼자 떠 잡숫고 있는데 치아는 하나도 없이 호물호물, 손은 주름투성이, 눈은 촛점이 흐리고 동작은 느리고 어깨는 한줌, 비쩍 마른 새하얀 얼굴은 미이라 같아 보기에는 좀 무섭다. 그래도 입을 크게 벌리고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이신다. 불쌍하다. 그런데 7명 중 4명은 코에 영양을 공급하는 튜브를 끼고 있다. 7년간 투병중이라는 어느 할머니는 의식도 없고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는 없지만 영혼도 떠나버린 것 아닐까 의심이 날 정도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노인인데 자식들의 피같은 영양을 수혈 받아 그렇게까지 살아야할 이유가 무얼까 싶기도 하다.
귀가 후에도 노인들의 모습이 선하여 마음이 언짢다. “아냐, 난 저렇게 될 때까지 살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그래도 자손들은 거액 보증금에 월 이백만원이상을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겠지. 아무리 잘 산다 해도 매달 그렇게 지불하는 일은 쉽다고 볼 수 없지. 내 외아들은 내가 늙으면 그렇게 해 주기 힘들 것 같다.
3개월이 어느새 지나 계절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직도 지팡이 없이는 보행이 불편하시다. 조만간 퇴원하시면 자손들이 모셔야 할 것이다. 이웃에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
집에서 모셨더니 날이 갈수록 집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고, 집안에 회색분위기가 가득 차서 식구들이 모두 우울증에 걸렸다. 5년째인데 형제도 친척들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젠 젊은 사람들의 인생을 멍들게 하는 노인이 미운 생각이 든다 했다. 노인을 요양원에 모신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 면회를 가는데, 그렇게 밉던 노인이 가끔 만나니 미운생각은 다 잊었고 인간적으로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제야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다 한다.
이런 조언도 한다. 노인 병원에서는 자연사가 안되고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회복가능성도 없는 노인들에게 발달된 현대의학으로 식물인간같이 살려놓으므로 품위있게 생을 마감하기 힘들고 결국 중환자실에서 가신다. 노인이 여러해 병원에 계신동안 비용도 만만찮았고 집안의 화목이 다 금 갔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후 지금은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었고, 다툴 일도 없어졌다며 노인문제가 큰 골칫거리였었다 했다.
허리케인의 여파로 나도 한동안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밤중에 잠을 설치고 꿈도 많이 꾼다. 이 가을에 여기저기서 놀러가자는 권유가 들어오는데, 사실 등산을 가는 정도는 건강 차원에서도 가는 게 좋을 것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지 못한다. 마음이 무거워선지 몸까지 차츰 무거워지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까. 마음속에 자꾸 그늘이 늘어 간다. 큰산을 만나니 지나간 작은 산들은 산같지도 않아서일까. 그전에는 무슨 걱정이 있었는지 다 잊어버렸다. 바쁘게 지내느라 당시에는 몰랐고, 어느 때던지 걱정 없이 산 적이 없었는데도,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렇게 느껴진다.
요즘은 허리케인 피해지역이 어떻다는 소식이 별로 없다. 더 이상 새 소식도 아니고 복구가 되어가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일이긴 하다. 어머니도 조금씩 회복되시고 있다. 병원에 적응이 좀 되셨는지 얼굴이 맑아지고 편안해졌다. 어눌하던 발음도 많이 나아졌다. 기운만 좀 없지 통증을 모르니 그도 복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신다.
미국에서 허리케인 지역이 나날이 복구되 가듯이 어머니도 나날이 복구 되 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