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마음

나의 고민

이예경 2009. 6. 10. 23:37

아침에 어머니를 내려보냈다

주간보호실 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현관 층계에서 기다리신다

그런데 오늘 따라 인터폰이 울렸다

 

어머니께서 팬티에 대변을 실수하셔서 갈아입어야 한댄다

나는 설겆이 하던 고무장갑을 벗고 황급히 팬티를 들고 뛰어내려갔다

그런데 어디서 갈아입을 수 있다는건지 모르겠는데...

 

어머니는 팬티에 똥이 한바가지인데 어떻게 앉겠냐고

그냥 집에서 갈아입겠다고 차를 보내버렸다

나도 그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잘됐다

 

안그래도 걸음이 어눌한데 오물젖은 팬티를 입은채 걸으려니

어머니는 걸음이 쉽지않고 나는 혹시 엘레베타에 흘릴까봐 조마조마하다

우선 일회용 장갑을 찾아 손에 끼고

화장실에 들어와 바지를 벗겨보니 토할것 같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반설사로 찐득거리는 똥이 진짜 한바가지로 바지 내복 팬티에 그득하다

 

어머니 아침식사 잘 하셨나봐요 내가 넌지시 말하니

아침에 뭐 먹은 것도 없는데 그렇구나 하신다

워낙 식욕이 좋으셔서 잘잡수시고도 항상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어머니도 씻겨야지 옷도 빨아야지 바쁘다

오물 뭇은 옷들은 변기에 흔들어 물을 내리기를 서너번 반복 한 후에

대야에 유한락스를 풀어 담가놓았다

 

어머니 목욕이 끝나 새옷으로 갈아입히고 옷을 빨고

내차로 노인복지관에 모셔다 드리고야 한시름 놓았다

 

가끔씩 예기치 않게 이런 일이 생기면

그날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일쑤다

요즘은 전처럼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왜 늦었느냐 물으면 웅얼웅얼 얼버무릴 수 밖에 없다

뭐 좋은 내용이라고 일일이 그대로 전할 수 없어 난감하다

 

노인 모시는게 그렇지 머...하는데

모셔본 사람들은 말 안해도 다 알고

안 모셔본 사람들은 자세히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식사 중에는 별난 소리를 다 낸다 이상하게도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입을 벌릴 때마다 "쩍"

음식을 씹을 때마다 쩝 쩝, 계속 쩝쩝

국물을 드실 때는 후루륵 후르륵

그리고 사이사이에 트림을 하실 때마다 끄르륵

방구를 수시로 뀌시고

어느날 세어 봤더니 트림만도 10번 이상 하셨다

 

남생각 할 줄 모르고 이기적이고

김치속을 탁탁 털어서 배추만 드시거나

반찬을 이것 저것 뒤져가며 집으시는 모습을 보면

일제시대에 호스돈여고를 나오신 분 맞나 싶다 

 

너도 나이 팔십육세 되어봐라

앞일을 모르는데....참아라 참아라....

 

그런데 친정어머니는 멀쩡한데 왜 시어머니는 매너가 꽝일까

 

그래도 계속 참으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식사하고 지냈는데

3년이나 이렇게 잘 지냈는데.....물론 지금도 잘 참고 있기는 한데.....

속으로는 부글부글.....요즘은 자주 짜증이 난다

 

이럴땐 어째야 좋지?

이게 마음 수양이 잘 되지 못한 나의 고민이다........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마주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게 수양이 잘 되지 못한 나의 고민이다..........

어떻게 내 마음을 닦아야 할까........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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