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태을금화종지

이예경 2009. 6. 10. 00:26

 

( "여동빈" 지음... 리하르트 빌헬름"(번역)

빌헬름은 동양의 수행과 철학 세계를, 체계적으로 서양에 알린 첫번째 사람

"칼 융" 도, 빌헬름에 감명받아서, 선도 수련을 하고, 그의 사상의 체계를 세웠다.)

 

이책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신선인 여동빈이 후인들을 가르친 바들을 기록하여 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선도 수련서라 할 수 있다. 주로 수련과정에서 나타나는 빛을 중심으로 하여, 이론,방법,주의점등을 설명하고 있는 金丹에 관한 책이다.

 

제목에서의 太乙이란 태초를 뜻하고, 金華란 황금꽃내지 황금빛을 뜻한다고 역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책은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신비롭고 신령한 태초의 빛을 수련을 통하여 되찿고 그 빛을 나의 몸속에서 돌려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특이하다할 수 있는 점은 대부분의 수련지침서가 하단전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반하여 이 책에서는 상단전 특히 "천심( 天心 ) 과 천목 ( 天目 ) " 의 수련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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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과관계된 부분 요약

 

여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반조(反照)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알아차림으로써 목표에 이른다.

반(反)이라는 것은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마음으로부터 만물을 형성하는 영적작용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우리는 육척의 몸 안에서 하늘과 땅이 열리기 전부터 존재해 온 형체를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겨우 한두 시간 정좌하여 자기 자신만 둘러보고는 그것을 반조라고 부른다면 거기에 무슨 결실이 있겠는가?

자신의 코 끝을 응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코 끝에 생각을 붙잡아 매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코끝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 생각을 양 눈의 사이 중황(中黃)에 집중해야한다는 의도도 아니다. 눈이 어디를 향하면 마음도 그곳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것이 위와 아래를 동시에 향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 그 자체로 혼동해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의 참의미는 무엇인가? 코끝 이라는 말은 아주 오묘하다.코는 눈에 대해 길잡이 역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코를 기준삼지 않으면 눈을 너무 뜬 상태에서 먼 곳을 바라보게 돼어 코가 보이지 않게 돼거나, 또는 눈을 너무 내리 감아서 역시 코가 보이지 않게 됀다.

눈을 너무 크게 뜨면 시선이 바깥으로 쏠려 쉽게 주의가 산만해진다. 너무 내리감으면 안으로 들게 돼어 혼미해지기가 쉽다. 반 눈을 뜬 상태에서 코 끝이 보이는 때가 올바른 자세이다. 그러므로 코가 길잡이 역활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꺼풀을 올바르게 내리고 빛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오도록 하는 일다. 애쓰지 말고 그냥 빛이 응집돼어 흘러들어 오기만 바라는 것이다.

코 끝을 바라보는 것은 최초 좌선을 시작할 때 시선이 올바른 방향으로 고정돼게 하려는데 있으며, 그리하여 길잡이 역활이 끝나면 그대로 방치해두면 됀다. 이것은 마치 일꾼들이 다림줄을 세우는 것과 같다. 일단 다림줄이 세워진 다림줄에 따라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양 눈으로 코 끝을 바라보고 편안한 자세로 똑바로 앉아 마음을 연중(緣中)에 고정시킨다. 그것은 반드시 머리의 중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확히 양 눈 사이에 있는 지점에 상념(相念)을 집중하는 일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빛은 극도로 유동적이라서 양 눈의 중간지점에 사념을 집중하면 빛이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굳이 노력하여 특별히 중궁(中宮)에 주의를 쏟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몇 마디 속에 중요한 요지가 들어있다.

연중(緣中)이란 극히 오묘한 말이다. 중(中)과 혜(慧)를 뜻한다. 상념이 떠올라 오면 완고하게 앉아 있어서만은 안돼고 그 상념이 어디에 있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지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더 깊게 추구해봐야 얻는 것은 없다. 상념이 어디로부터 생겨나는지를 주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며 그 너머까지 추구해서는 않됀다. 왜냐하면 마음을 밝혀 낸다는것(의식으로 의식 너머에까지 이른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쉬게 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관(觀)이요, 그 외의 것은 잘못됀 것이다. 그것으로는 어디에도 이를수 없다.

상념이 끊임없이 흐를 때에는 그것을 멎게 하고는 관(觀)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관한 다음에 다시 멎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빠른 깨달음을 위하여 정(定)과 혜(慧)를 동시에 닦는(定慧雙修) 방법인 것이다. 이것을 회광(回光)이라고 한다. 회(回)는 지(止)요, 광(光)은 관(觀)이다. 주시, 관(觀)이 없는 멈춤(止)은 빛(光)이 없는 회전(回)이다. 멈춤이 없는 관은 회전이 없는 빛이다. 이것을 유념하라.

 

여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성과를 구하지 않는 집중됀 마음으로 결행(決行)돼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성과가 있게 된다. 수행의 초기에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증상이 있다. 그것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다. 거기에는 요령이 있는데 그것은 호흡의 포로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흡(息)이란 자신(自)의 마음(心)이다.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호흡인 것이다. 마음이 동(動)하는 순간 기(氣)가 생(生)한다. 기란 원래 변형됀 마음의 활동이다. 우리의 생각은 극히 빨라서 찰라에 빠져드는 망상에도 호흡이 뒤따른다. 내적인 호흡과 외적인 호흡은 마치 목소리와 그 반향처럼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는 수만 번의 호흡을 하고 수만가지의 망념을 품는다. 그렇게 하여 명석하던 정신은 마치 나무가 말라죽어 재가 돼어 버리듯이 쇠하여 간다.

그러면 마음에 아무런 생각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생각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숨을 쉬어서도 안된다는 것인가? 숨을 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데..

병에 대해서는 약을 마련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마음과 호흡은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빛의 회전(回光)과 호흡의 조절(調息)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귀의 빛(耳光)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눈의 빛(日光)이 있고 귀의 빛(耳光)이 있는 것이다. 눈의 빛은 바깥에 있는 일월(日月)의 광이 결합된 것이요, 귀의 빛은 안에 있는 일월의 정(精)이 결합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정(精)이라고 하는 것은 응집된 형태의 빛(光)이다. 근원은 같으나, 이름만 다를 뿐(同出異名)이다. 그러므로 들음(聽)과 봄(明)은 똑같은 영묘(靈妙)한 빛이다.

 

좌선(座禪)할 때는 눈꺼풀을 내리고 양 눈을 사용하여 기준을 정한뒤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마음을 돌려 호흡에 귀 기울인다. 그 호흡의 들고 나는 소리가 귀에 들려서는 안된다. 소리없는 호흡을 듣는 것이다. 호흡에 소리가 있게 돼면 호흡은 거칠고 얕아져서 깊에 뚫지를 못한다. 마음은 아주 가볍고 미미해져야 한다. 마음은 놔버려지면 놔버려질수록 미미해지고, 미미해지면 미미해질수록 고요해진다. 극도로 고요해진 마음은 홀연히 멈추게 된다. 그 때는 진식(眞息)이 나타나고 마음의 본체가 의식되기에 이른다.

마음이 미세해지면 호흡도 미세해진다. 마음의 조그만 움직임도 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호흡이 미세해지면 마음도 미세해진다. 기의 조그만 움직임도 마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기부터 조절해 나가야 한다. 마음이 직접 조절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가 조절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응집된 기를 유지해 나가는 방법이다.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움직임의 본성을 아는가? 움직임은 외적 수단에 의해 야기될수 있다. 그것은 지배관계를 일컫는 말일 뿐이다. 단순히 뜀박질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런즉 고요한 집중으로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음과 기가 어떻게 서로 영항을 미치는가를 알았던 대성인들은 후세 사람들을 위하여 보다 쉬운 방법을 고안해냈던 것이다.

'암탉이 계란을 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으로 항상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중요한 비결이다. 기를 따뜻하게 함으로써 암탉은 계란을 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기는 단지 알껍질만 덥히는데 그친다. 그 내부까지는 침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그 기를 이끄는 것이다. 그것은 들음으로써 된다. 그렇게 일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마음이 들면 기도 들게 되어 온기를 얻은 병아리는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탉은 때로 둥우리를 떠나면서도 항상 귀를 기울여 듣는 자세를 늦추지 않는다. 그와같이 정신의 집중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정신의 집중에 끊어짐이 없고 따뜻한 기도 밤낮 단절됨이 없기 때문에 영혼(神)이 소생하게 된다. 영혼이 소생한 것은 먼저 마음작용(心)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을 죽일 수 있을때 원신(元神)이 소생하게 됀다. 마음을 죽인다는 것은 그것을 말라 시들어 버리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갈라지지 않고 모여 하나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여조사께서 말씀하셨다.

혼침과 산란의 두 가지 병증은 매일 끊이지 않는 고요한 정진에 의해 극복되어져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성과가 있을 것이다. 만일 정좌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산란한 상테에 빠져 버릴 것이다. 마음의 산란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것을 제거하는 기회가 된다.

알아차리는 혼침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혼침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혼침이 진정한 혼침이다. 알아차리는 혼침은 완전한 혼침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명료함이 있기 때문이다. 산란은 정신이 바깥으로 떠돌 때 온다. 혼침보다는 산란을 치유하기가 훨씬 쉽다. 그것은 마치 병에 걸렸을 때와 같다. 통증과 병기(病氣)가 느껴지면 약으로 구제할 수가 있지만 혼침은 마치 알아차리지 못하는 질병과도 같다. 산만(散漫)한 것은 조치가 가능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정리되 수 있지만 혼미하고 침침한 것은 무겁고도 어둡다, 산만과 혼란은 최소한 그 처소가 있지만 혼침의 경우는 넋만이 활동한다. 산란의 경우는 혼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혼침의 경우는 완전히 어둠이 지배한다. 명상 중에 졸리게 되는 것은 혼침의 작용이다. 조식만이 혼침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록 코를 통한 호흡이 진식은 아니지만 진식의 들고 남도 그것과 결부되어 일어난다.

 

 

그러므로 정좌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마음을 고요히 하고 기를 응집시켜야 한다. 어떻게 마음을 평정시킬 것인가? 호흡으로이다. 마음은 오로지 숨이 들고 나가는 것만 의식해야 한다. 숨소리가 귀에 들려서는 않된다. 들리지 않게 되면 가늘어지고 가늘어지면 맑아진다. 거칠어지면 탁해지고 탁해지면 혼침이 생겨나서 졸음이 오게 된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호흡하는 동안 마음을 올바로 쓰는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씀이 없는 씀(不用의 用)이다. 이른바 듣는 일을 아주 가볍게 주시하는 것(照聽)이다.

이 문구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듣는 일을 주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눈빛(眼光)의 자연스러운 조사(照射)이다. 눈은 내면만 응시할 뿐 바깥은 바라보지 않는다. 바깥을 보지 않고도 밝게 감지한다는 것은 내면을 응시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실제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뒤의 빛을 자연스럽게 듣는 것이다 .귀는 안으로만 들을 뿐 바깥 물건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바깥 물건에 귀기울이지 않고 밝게 감지한다는 것은 안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내부의 어떤 것에 귀기울이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렇게 듣는 것이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 것(無聲의 聲)이요, 이렇게 보는 것이 모습없는 모습을 보는 것(無形의 形)이다. 눈이 바깥을 보지 않고 귀가 외계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그것들은 닫혀서 내면으로 침잠해버리는 성질이 있다. 안으로 듣고 귀기울려야만 감관이 바깥으로 향하지도 않고 내면으로 침잠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해서 혼침은 제거된다. 그것이 해와 달의 정(日月精)과 빛(日月光)의 교합이다.

 

만약 혼침으로 말미암아 졸음이 오면 일어나 걸어다니라. 마음이 맑아지거든 다시 정좌하라. 시간이 지나면 성과가 있어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제 1장. 천심(天心) ***

 

이 세계의 큰 진리의 길(道)의 근원을 보면 하늘의 중심이, 곧 진리의 길의 뿌리이다...

만일, 사람이 온전히 "고요함"(靜)에 이를 수 있다면, 하늘의 중심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부모의 감정이, 저절로 움직여서, 세상의 이치에 따라, 흐르게 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사람인데, 이 때에는, 아직 으뜸된 "본성"(元性)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으뜸된 본성은, 몸이 부모로 부터 태어나기 앞서, 곧, 수태되는 때에, 진리가 감추어진, 참된 공간(眞竅;보이지 않는 몸)에 머물게 된다...

탄생 때에는, 개체화의 한 울음 소리와 더불어, "본성"(性)과 "생명"(命)의 둘로 갈라지게 된다... 이 때로부터, "온전한 고요함"(靜)을 성취하지 않는 한, 본성과 생명은, 서로 다시 만나지 못한다...그러므로, "태극도"(太極圖)에서 말하기를, "위대한 하나"(太乙)는, 그 자신 속에, 참된 기(眞氣)와, 씨앗과, 정신과, 혼백(魂魄)을 품고 있다... 생각이 완전히 안정에 이르고, 따라서, 하늘의 중심이 나타나게 되면, 심령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근원" 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인간의 본성은, 보이지 않는 신체 속에 머물러 살고 있으나, "빛의 빛남" 은, 두 눈 사이(인당)에 머물러 산다... 그러므로, 조사(祖師)는, "빛의 회전"(回光)에 대해서 가르치어, 사람들이 "참된본성" 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

참된 본성이란, "근원적 정신"(元神)이며, 근원적 정신이란, 바로, 사람의 "성"(性)과 "명"(命)을 이름이다...

그것은, 구극에 있어서는, "근원적 기운"(元氣)이며, "진리의 길" 이라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조사"(祖師 - 정신적 스승, 여동빈)는 또한, 진리(道)의 활동은, 의식적 행위(有爲)를 통하여, 무의식적이고, 행위함이 없음에로, 이르는 것임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사가 이르기를,

 

"생명의 결정(丹)의 비밀은, 모두 의식적인 행위를 빌어서, 무의식적이고, 행위없음에 이르는데 있다"(丹訣總假有爲而臻無爲)

 

라고 말하고 있다...

 

"의식적인 행위" 라 함은, "빛의 회전" 과 "빛의 되돌려 비춤"(回光返照)을 통하여, "하늘의 신비한 기틀"(天機)이 나타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참 씨앗"(眞種)이 생겨나면, 옳은 방법을 좇아서, 가열과 융합을 행함으로써, "황금빛 생명의 결정체" 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 단계의 고비를 넘어서, "진리의 태아" 로서 형성되고, "따뜻하게 양육함"과 "깨끗이 씻고", "목욕(沐浴)함" 을 통해서, 더욱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무의식적이고 행위없음"(無爲)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태아" 가 생기고, 껍질을 벗어버리고, 세속적인 세계를 넘어서,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기까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번갈아 흐르는 듯한, 수행기간(火候)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변화하는 단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단번에 무위의 세계로 들어감을 가르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長生)을 구하는 사람은, 근원적인 본성 과 생명이 솟아 나오는 곳(元性發源之處)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 제2장. 원신(元神), 식신(識神) ***

 

 

"삼신 우주론" 에서는, 인체 구성의 3요소는, "성, 명, 정" 이라 할 수 있는데, "성"(性)이란 본성, 품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고, "명"(命)이란 목숨, 생명을 말합니다...

 

"정"(精)이란, 생명의 보물창고, "에너지의 덩어리" 라고 할 수 있습니다...(기와는 다르죠.)

 

"정" 이, 기화(氣化)되어, "기"(氣)가 되고, 기(氣)가 "신" 화(神 化)되어, "신명" 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활동이 있고, 의식과 사유가 있고, 번뇌와 망상과 욕망이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사람의 몸이, "기"(氣)로써 형성되는데 있어서, "근원적 정신"(元神)과 "의식적 정신"(識神)이, 어떠한 구실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조사(祖師)가 이르기를, 사람의 "삶" 은, 하루살이와 같은 것이며, 근원적 정신의 참된 본성(眞性)만이, "하늘과 땅의 순환"과 "영겁의 운명" 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의 참된 본성은, "무극"(無極)으로부터 생겨나며, 태극의 원초적 기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늘과 땅의 본질을 얻어, "의식적 정신" 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본성을 받아, 근원적 정신이 된다...

 

"원신"(元神)에는, "분별하는 의식"과 "지식" 이 없으나, 살아 있는 몸의 형성과정을 규제할 수 있다...

 

"식신"(識神)은 매우 분명한 것이며, 매우 활동적이고, 또한, 언제든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주인" 이다...

 

그것은, 사람의 몸 속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아니무스"(魂-혼)가 되고, 몸을 떠나면, 영(靈)이 된다...

 

"원신"(元神)은, 신체의 유무에 의존하고 있다...

 

수태하여 몸이 이루어지려는 때에는, 원신은 아직, 의존할 태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무극 속에서 스스로를 응결시키고 있다...

 

생명이 탄생할 때에, "식신"(識神)은, 그 첫 울음의 흡기를 따라서, 기운을 들이마시면서, 새로 태어난 몸을 주거로 삼는다...

 

그것은, 사람의 심장에서 살게 되는데, 이 때로부터, 마음은 주인이 되며, 원신은, 그 자리를 잃고, 식신(識神)이 세력을 가지게 된다...

 

원신은, 고요함을 사랑하나, 식신은 움직임을 좋아한다...

 

그 움직임에 있어서, 식신은 "감정"과 "정욕"에 얽매이게 된다...

 

식신은 밤낮으로, 근원적인 정수(精水-元精)를 소모시켜, 원신의 힘을 다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식신은, 드디어 껍질(몸)만을 남긴채, 떠나가 버린다...

 

평소에, 선행을 쌓은 이는, 죽음이 다가 올 때에, 그 "정신의 힘"(氣)이 깨끗하고, 맑아서, 위의 열린 구멍인, 입과 코를 통해서 밖으로 나아간다...

 

이 맑고 가벼운 기운은, 하늘로 떠올라서, 다섯 겹의 신통력을 가진, "음선"(陰仙-守護者) 또는,

"음신"(陰神-守護靈)이 된다...

 

그러나, 만일에 일생동안, 원신의 힘이, 식신에 의해서, 탐욕과 노여움과 정욕과 갈망에 따라, 소진되어 버리고, 따라서, 온갖 죄업을 다 지었을 경우에는, 죽음의 순간에, 정신의 힘이 어둡고, 혼탁해져서, 식신(識神)은 아래의 열린 구멍인, 항문을 통해서, 숨을 따라,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이것은, 혼탁하고, 불결한 정신의 기운이므로, 아래쪽으로 응결해서, 지옥으로 가라앉아, 드디어는 "괴령"(鬼靈)이 된다...

 

이 때에는, 원신이 본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성의 힘과 지혜마저도, 이로 인해서 감소되고 만다...

 

그래서, 조사가 이르기를, "생각이 움직일 때에는 이미 그것은 좋은 것이 못된다" 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일, 원신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식신" 의 활동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빛의 회전" 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다...

 

빛을 회전시키는 일을, 실습할 때에는, "몸"과 "마음" 의 양쪽을, 다 잊어버려야 한다...

 

마음은 죽고, 정신은 살아 있듯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신이 활동하면, 기가 몸을 돌기 시작하여, 놀라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조사가 이르는, "가장 좋은 상태" 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정신을 "하복부"(太陽神經叢)에 가라 앉도록 해야한다...

 

그 때에 "기" 는, 정신과 교통하며, 정신은 기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우선, 출발점이 되는 방법인 것이다...(下手之法)

 

 

이 방법을 오래 계속하면, 생명의 궁전(命宮)에 있는, 원신이 변화하여, "참다운 기" 로 된다...

 

이 때에, 물레방아의 회전방식을 따라서, 원신을 증류함으로써, "황금빛 생명의 결정체"(金丹)를 만들게 된다...

 

이것이, "집중하는 방법"(轉手之法)인 것이다...

 

다음에는, "기" 로써 이루어진, "진리의 태아" 가 완성된 때에, 모태에 해당하는, 사람의 껍질에서 나와, 다시 "공허"(空虛)로 돌아가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을 끝맺는 방법"(撤手之法)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득한 옛적부터 전해져 온, "위대한 진리의 길" 에 이르는 순서이며, "영생하며 죽지 않는 정신" 과 성인이 되는, 참된 방법인 것이니, 결코, 허황된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힘써서 이러한 단계가 완성되면, 그 때에는, 어두움의 원리에 속하는, "모든 것"(群陰)이, 다 벗겨져 없어지고, 심령의 실체는, "순수한 빛"(純陽)으로 변화하며, "식신" 이 "원신" 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사람은, 무한히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며, 윤회로부터 초월한, "여섯 겹의 신통력" 을 가진, "황금의 선인"(六通之金仙) 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고귀한 방법을 활용해서,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삶과 죽음의 윤회의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불교에서는, 육통,(육신통-六神通) 즉,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여의통(또는 신족통), 누진통의 여섯가지 초능력이라고 말한다...

 

"육통지금선"(여섯가지 신통력을 가진, 황금의 선인)은, 신통자재한 능력을 지닌, 초인으로써, 이러한 육통을 통달한, 선인이라 할 수 있다...

 

 

 

 

 

*** 제3장 회광수중(回光守中) ***

 

이 장의 요지는, "빛을 돌림"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중심을 지킴" 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사람의 몸의 제일 귀중한 보배는, "근원적 정신" 이 그의 주인이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일, "원신"이 "식신"의 부림을 받는 경우에는, 그 원신은, 밤낮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소모되어, 결국에는, 힘이 모두 빠지게 되고, 몸은 사멸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본장에서는, "식신"의 작용을 제어하며, "원신"의 힘을 보존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빛을 돌리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일은,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훌륭한 집을 지으려 한다면, 먼저 기초공사를 잘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튼튼한 기초가 마련이 되면, 그 다음의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데, 벽의 기초를 깊고 튼튼히 할 수 있으며, 기둥과 벽을, 잘 세울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기초를 튼튼히 만들지 않고서, 어떻게,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다하더라도, 조사는, 그들이, 그 일을 도중에 중단해 버릴것을 염려한다...

 

그러므로, 조사는 거듭해서 이렇게 말한다...

 

"백일동안 꾸준히 수련을 쌓으면, 빛이 비로소 "진정한 것" 이 된다...

그럴 때에, 그 빛은, "정신의 불" 이 될것이다"

 

이와 같이, 힘을 써서 수련에 전념해 나아가면, 다시 백일 뒤에는, 빛 가운데에, 참된 창조적인 한 점의 빛이,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도" 를 구하는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하여서, 이것을 마땅히 탐구해야 할 것이다...

 

 

 

 

 

*** 제4장 회광조식(回光調息) ***

 

빛을 회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법" 임을 말하고 있다...

 

수련에 한 걸음의 진보가 있으면, 가르침의 내용도, 따라서 한층 깊어진다...

 

배우는 이는, "마음의 움직임" 과 "호흡작용" 의 상관관계에 주의하여, 졸음(昏沈)과 흩어짐(散亂)이라는 증상에, 빠져드는 것을 막도록 하여야 한다...

 

조사가 염려하는 것은, 처음 배우는 이가, 자리에 앉아서, 눈꺼풀을 내리고 있을 때에, 헛된 생각이 일어나고, 마음이 어지러워서, 그 움직임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조사는 호흡을 세고, 사념을 고정하여, 집중시키는 수련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의 힘을 이루는, "신" 과 "기" 가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숨(호흡)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호흡의 리듬이 조절되지 아니하는 것은, 모두 마음의 불안정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방법은, 먼저 무엇보다 한 번 내뿜는 숨과 들이쉬는 숨이, 조용히 드나들어, 숨쉬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하고, 다만, 마음으로 잠잠히, 호흡의 수를 헤아리는 일이다...

 

만일, 마음이, 호흡의 출입의 횟수를 잊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마음이, 밖으로 "기" 를 빼앗기고 있든가, 아니면, 졸음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이것은, 마음이 졸음으로 빠지려는 상태이므로, 이 때에는 정신의 작용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만일, 눈꺼풀을 내리고, 코 끝을 주목할 때, 입을 굳게 다물지 않으며, 이를 단단히 물지 않고 있다면, 마음이 밖으로 움직여 나가기 쉽다...

 

그 때에는, 서둘러 입을 다물고, 이를 악물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오관의 작용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르도록 하며, 정신의 작용이, "기" 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 과 "숨" 의 조화로운 상관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일정 시간 동안 수련을 쌓으면, 마음의 움직임과 호흡이, 자연스럽게 서로 협동하여, "조화" 를 이루게 된다...

 

조화를 이루게 되면, 호흡의 횟수를 헤아릴 필요도 없이, 숨이 자연스럽게 조정이 된다...

 

호흡이 조용하게 자리 잡히면, "졸음" 과 "흩어짐" 이라는, 두 가지의 증세가 저절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 제5장 회광차류(回光差謬) ***

 

"명상수련"(回光)에 있어서, 잘못된 길에 대해서, 주의하도록 일깨워, 잘못된 체험(魔境)에 빠지지 않고, "기" 가 감추어져 있는 바른 자리로 들어가도록 가르치는데 있다...

 

앞의 장에서, 이미 호흡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므로, 이 장에서는, 수련하는 사람이, 빛을 돌림에 있어서, 자칫 곁길로 빠져드는 위험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조사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마음의 상태는, 스스로 체험함으로써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눈을 감고,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여러가지 빛의 광채와 선명한 색깔이 나타나기도 하며, 보살과 여러 신들이 가깝게 다가오고, 이 밖에 여러가지의 환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는, 모두 안주할 자리가 아니며, 사람을 미혹시키는 마경인 것이다...

 

또한, 빛을 회전시켜, 조용한 상태가 되었더라도, 온 몸을 도는, "기" 와 "숨" 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면, "신장의 영역의 물"(신수=神水)이, 위로 올라갈 수 없어, 아래의 "원기" 가 차디차게 되고, 숨이 가라앉아 탁하여져, 거칠게 된다...

 

이것이, "곤괘에 해당되는 곳에, 부드럽고 밝은 기가 없어, 헛된 공상(頑空)의 세계로 빠진다"

는 상태인 것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갖가지의 잡념이 일어나고, 그것을 멈추려 해도, 멈추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때에는, 수행을 중지하고, 일어나서, 잠시 거닐도록 해야 한다...

 

얼마 후에, 마음과 기가 안정되면, 다시 앉아, 수행으로 들어가야 한다...

 

수행을 할 때에는, 그 현재상태에 관해서, 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만일, 하단전에서 기와 호흡이 일치되어, 그 자리가 따뜻하여 지고, "참 빛에 속하는 것"(眞陽之機)이, 어렴풋이 움직이기 시작한 듯한, 하나의 직관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바로, 참된 진리의 길로 들어서는, "구멍"(機竅)을 체득하는 표시인 것이다...

 

이 참된 진리의 길로 들어서는, 구멍을 체득하게 되면, 헛된욕망의 세계나, 마경으로 빠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제6장 회광증험(回光徵驗) ***

 

조사(여조=순양자)가, 회광수련의 효과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수련의 노력을 오래 계속해 나가면, 그 효과는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회광(回光)의 체험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그것이 차거운지 더운지를, 몸으로 아는 것과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면하게 힘썼는가, 아니면 게을렀는가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다른 뜻이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조사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수련이 점점 깊어졌을 때에, 자기 스스로의 체험에 대해, 의심이 생긴다든지, 그 체험이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가 분명하게, 확증이 되는 체험에 관해서 밝혀주어, 도를 닦는 이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조사가 가장 염려하는 일은, 수행자가 잘못하여, 곁길로 빠져버려, 참된 길에는, "확실한 증험" 이 있음을 모르는데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자기의 메마른 본성을, 오롯이 지키고만 있을 뿐, "생명의 자리"(命竅)에는, "기" 를 움직이는, 미묘한 작용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조사는, 여기서 거듭 가르치기를, 크나큰 진리의 길을 찾아, 노력하는 경우에는, 얕은 체험의 경지로부터, 점차로 깊은 체험의 경지로 나아가서, 차례대로 확증의 체험을, 얻어 나아갈 것을 지시하고 있다...

 

"번뇌의 흐름" 이 없어질 때에, "자비의 빛" 이 나타나는 것이다...

 

확증의 체험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주요한 것은, 조용히 명상하고 있을 때에, 호흡의 기운이, 실날같이 가늘게, 끊임없이 이어져서, 몸이 취한듯이, 또는, 목욕물을 끼얹은듯이, 기분이 좋아지는 체험인 것이다...

 

이 같은 경지에 이르면, 온몸을 도는 기운이, "양"(陽)한 것이 되어, 조화를 이룬다...

 

이리하여, 신화(神火)는, 신장의 물의 영역(신수=神水)으로 들어간다...

 

"신화" 와 "신수" 가 하나로 응집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보이지 않는, 몸 속의 물 가운데에, 불이 타오르고, 참된 생명을 얻는, "기연"(機緣=命機(명기))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사가, "황금꽃이, 갑자기 토해져 나온다" 라고 말하였던, 체험이 이것이다...

 

이것이, 유가에서 말하는, "본성을 실현하여, 참된 생명에 이르른다" 하는 경지이다...

 

음(陰)의 기운이 극점에 이르르면, 반드시 양(陽)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동지가 되면, 천둥(雷)이 땅 속에서 웅크린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일양래복"(一陽來復)의 상태이다...

 

또한, 명상을 오래 계속하면, 망념이 점차 사라져 버린다...

 

"신"(神)이 기혈에 모이고, "기"(氣)가 응결되어, 그 영묘한 작용이 고정된다...

 

이것이, "신(神)이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간다"(神入谷中) 라고 말하는 상태이다...

 

"곡중" 이란, 보이지 않는 "기"(氣)가 감추어져 있는 자리(氣竅)를 이르는 말이다...

 

빛을 돌리는 노력이, 이러한 단계에까지 이르르면, 하단전의 따뜻한 기운이 하나로 녹아서, 그 기운이, 아래쪽의 원천(下元)으로부터, 점점 상승하여, 온몸을 감싸게 된다...

 

따라서, "몸뚱이가 마치, 솜뭉치같고, 옥돌 같아져, 그 몸에 원기가 왕성하여진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때에, 신심은 쾌적해지고, 온화해져서, "참된 씨앗"(眞種)이 태어나려 한다...

 

이른바, "한 알의 참다운 황금구슬" 이, 쌀알만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호흡법의 수련과 더불어, 황금의 구슬을 얻으려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요점은, 눈꺼풀을 덮고(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 볼 때에, "신심"(몸과 마음)은 내버리도록, 힘쓰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잊어버리고, "의식"이 밖으로 향하지 않게 될 때에, 참된 기운이, 저절로 그곳에 머물게 된다...

 

"기"(氣)가 머물면, "신"(神=영묘한 힘)도 머문다...

 

"신"(神) 이 기혈에 머물게 되면, "기"(氣)는 자유로이 뻗어나서, 몸이 편안해져, 참된 종자(眞種)가 태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자연스럽게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 제 7장 회광활법(回光活法) ***

 

제자가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노력하고, 발전하여, "생명의 선약"(眞種) 을 빨리 획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때에 조사가, 거꾸로 일상의 직업활동을 포기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독자는 여기서, 조사가 제자들이, 선약을 빨리 획득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는 것으로 의심할지도 모른다...

 

식자는 이일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그렇지는 않다. 조사는 제자들이, 아직 세상의 업보를, 다하지 않고 있음을 염려하여, 이와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불교의 스님들이, 큰 도는 닦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얻어 먹어서이다.)

 

그런데, 수련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마음은, 거울과 같은, 수면의 상태와 비슷하여 진다...

 

사물이 오면, 그것은 사물을 그대로 비쳐낸다...

 

사물이 사라지면, "신"(神)과 "기"(氣)는 저절로 다시 하나가 되어, 외적 사물로 말미암아, 흐트러짐이 없다...

 

조사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생각을, 잡아 매고 있어서는 아니된다" 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제자가, 참된 의지력을, 기혈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되면, 빛의 회전을 따로이 시작하지 않더라도, 빛은 저절로 돌게 되는 것이다...

 

빛이 회전하면, "선약"(眞種)이 저절로 생겨난다...

 

이 때에는, 세속적인 일거리를, 함께 행하여도,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을 처음 시작하여, "신" 과 "기" 가 아직 산란한 단계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온 힘을 다하여, 수행에 힘쓰고, 세속의 일거리로부터, 벗어나 있지 아니하면, 그는 낮 동안에 부지런히 일했어도, 저녁 때에는 지쳐 버려서, 수행에 게을러지게 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어느 때에 이르러서야, 깊은 비밀의 경지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처음 수련을 시작함에 있어서는, 집안의 일거리는 내버려야한다...

 

만일, 그것이 안 될 경우에는, 원칙에 따라서, 일처리를 해주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고, 자기는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수련의 노력이 쌓여서, 속깊은 확증을 체험할 수 있게 되면, 그와 더불어, 다시 일상적인 일거리를 처리하여, 세간사에 응하더라도 아무 상관없다...

 

이것을, "빛의 회전을 활용하는 방법"(回光活法) 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 옛날, "자양 진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수련할 때에, 세속에 섞이려면, 빛을 잠시 세속과 조화되게 한다...

그 때에 원은 원이고 사각은 사각이다...

그는 감추어진, 미묘한 것을 볼 수 있지만, 세상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일부러 헤아리는 일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

겉으로 보아서는, 누구도 그 사람의 참된 수련과 숨겨진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같이 말하는 데에는, 빛의 회전을 활용하는 방법이란, 빛을, 세속과 조화되게 하여, 세속에 섞여 살아간다(和光同塵)는, 뜻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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