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_3차 _갈릴레오를 찾아서_ 특별전 개최
'갈릴레오를 찾아서' 특별전 개최!!
제목: 갈릴레오를 찾아서
일시: 2019년 10월 3일 ~ 2020년 2월 24일
장소: 국립과천과학관 중앙홀 2층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임이 연기되었거나 중단되었고 휴관한 곳이 많아 답답한 차에
갈릴레오 특별전이 있어 찾아가 보았습니다. 어려운 이론보다는 체험전이라서 기대되었습니다.
체험관에 온 관람객들은 주로 학생들을 동반한 학부형들이었고 함께 체험을 독려하였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실제로 체험 결과와 옆에 써진 설명서를 봐가며 공부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사람들은 약간 많은 편이었고 모두들 진지해보였습니다.
상주하는 해설사가 있어서 의문점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유익했습니다
관련 동영상(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JG1gTdO3vFw&list=PLdWn6JEo7wDcD7rq1MKZUpzJo8A0rMT3b
근대과학을 시작한 과학자, 갈릴레오 !!
진자/낙하/경사면/포물선 운동 실험을 비롯해 지동설과 망원경에 관한 이야기가 전시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력에 관한 실험을 설명해줍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실제로 직접 해봐야죠
전자실험인데요 주기와 줄의 길이가 어떤 상관이 있나 체험해봅니다
전자실험이 여러가지 있는데요. 하나씩 모두 체험해볼 수 있어요
갈릴레오는 왜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갈릴레오는 1613년 태양의 흑점에 관한 논문을 출간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며 지구가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갈릴레오의 주장은 천동설을 지지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상충되었고, 이로 인해 1616년 교황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그릇된 것으로 부정하고, 갈릴레오에게 그 주장을 철회할 것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1624년, 새로운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즉위하자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철회하라는 기존의 입장에 탄원을 냈지요. 새 교황 역시 이를 거절했으나,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의 우위를 부정하지 않는 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에 대해 언급해도 좋다고 승낙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632년, 갈릴레오는 《두 주요한 세계관의 대화》를 출간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측에서 보았을 땐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담은 저서였고, 결국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게 됩니다. 갈릴레오는 교황의 명을 어긴 죄로 이단으로 몰렸고,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요. 결국 갈릴레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으나,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답니다.
교황은 갈릴레오에게 감옥 생활 대신 근신 명령을 내렸어요. 갈릴레오는 일흔여덟 살에 장님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오른쪽에 천재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수녀님은 누구일까요
수녀님이니까 부인은 아닌것이 분명합니다. 알고보니 갈릴레오의 맏딸 마리아 첼레스타 였습니다.
갈릴레오는 결혼을 하지않고 평생 연구에만 집중하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갈릴레오가 살던 시대의 이탤리는 아직 사회 전면에 걸쳐 교회의 권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신교를 신봉하는 유럽의 국가들은 학문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지구가 태양을 둘레를 돈다고 주장 했다는 이유만으로 화형 당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고 합니다.
갈릴레오는 피사에서 태어나 피사대학을 다녔고 모교의 교수가 된 뒤 3년 만에 파도바대학으로 옮겨갔습니다. 탑 가까운 곳의 ‘갈릴레오의 집’은 도서관 겸 연구소지요.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은 뒤 1634년부터 8년 동안 피렌체 남쪽 교외 아르체트리의, 미리 사 둔 별장 ‘보석’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갈릴레오는 결혼한 일이 없지만 가정부 마리나 감바와의 사이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사생아라 결혼할 수 없는 딸들을 그는 아르체트리의 산 마테오 수도원에 보냈는데, 작은딸은 평생 병치레를 했으나 큰딸 비르지니아는 16살에 베일을 쓰고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되었어요. 마리아는 34살에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아버지 갈릴레오와 서신으로 접촉했습니다.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갈릴레오의 편지는 찾을 수 없어도 마리아가 보낸 124통의 편지가 남아 있는데요. 이 편지들은 피렌체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갈릴레오 전집에 수록되었으나 사가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뉴욕 타임스> 과학기자를 지낸 소벨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갈릴레오의 딸>(1999)이 나오면서 거장의 인간적인 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딸의 편지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물씬 배어 있고 애틋한 사연도 많아요. 수도원의 추운 방과 거친 음식을 호소하면서 남는 이불을 빌려 달라고 하지요. 딸은 케이크, 냅킨, 약을 만들어 보내고 아버지는 손수 요리한 시금치를 보내 줍니다. 수녀가 될 때 택한 이름 첼레스테(하늘)에서 이미 아버지를 배려했거니와 마리아는 새로 나온 책도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버지는 수도원의 창틀을 손봐 주고 시계를 고쳐 줍니다. 갈릴레오가 살고있던 아르체트리의 별장은 산 마테오 수도원과 붙어 있지요. 서재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수도원을 바라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별장으로 돌아오기 넉 달 전 마리아는 이질에 걸려 죽는데요. 아버지의 엄청난 슬픔과 좌절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납니다. 8년 뒤 죽은 갈릴레오는 성당 종탑 밑에 묻혔다가 95년이 지난 1737년에야 산타 크로체 성당에 이장되었어요. 딸과 합장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무덤을 열어 이를 확인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지난해 봄 논쟁이 일어났고, 피렌체 과학사박물관장 갈루치는 디엔에이 검사로 합장 여부를 가려내고 갈릴레오의 실명 원인도 찾자는 학자들이 많았으나 산타 크로체 성당 주임신부 디 마르칸토니오는 그건 ‘사육제’(카니발)라고 단호히 반대했답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관측 400돌 기념행사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풍성하게 열리기도 했습니다.
갈릴레이 체험 대포실험입니다.
상주하는 여성 직원께서 체험을 도와주고 설명도 해주고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저서>
1586년《작은 천칭》(영어: The Little Balance) 물질들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한 균형
1590년 《운동에 관하여》(영어: On Motion)
1600년 《역학》(영어: Mechanics)
1606년 《기하학적 및 군사적 컴퍼스의 작동》기하학 및 군사 영역에서의 수행을 다룬 입문서.
1610년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라틴어: Sidereus Nuncius 별세계의 사자[*])
1613년 《흑점에 관한 편지들》(영어: Letters on Sunspots)
1623년 《분석자》(영어: The Assayer)
1632년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영어: Dialogue Concerning Two Chief World System)
1636년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영어: Letter to Grand Duchess Christina)
1638년 《새로운 두 과학에 관한 수학적 증명》(영어: Discourses and Methmetical Demonstrations Relating to Two New Science)
*** 한국어 번역본도 있으니 시간내어 읽어보면 좋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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