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열정과 사랑, 과연 젊은 이들만의 특권일까?

이예경 2016. 5. 20. 14:14

열정과 사랑, 과연 젊은 이들만의 특권일까?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미스터리 소설로서 엄청난 수수께끼와 누구도 상상 못했던 반전을 가진 걸작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노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뭐? 하며 에이, 이게 뭐야,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작가의 의도가 짐작된다. 젊은 시절에나 가능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 노인이 되어서도 가능한 것은 아닌가. 시대는 이미 변했다. 5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10여 년을 편하게 보내며 죽음을 맞이했던 20세기가 아니다. 육체와 정신으로 따지면, 이제 청년은 65세까지라고도 한다. 장년이 80세까지이고. 젊음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열정과 사랑, 모험 등은 60, 70대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기껏해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벚나무는 살아 있어.
지금도 짙은 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
그리고 이제 얼마 후엔 단풍이 들지.

 

 

소설 속에 나오는 이 말이 바로 노인들의 이야기다. 꽃은 졌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채롭게 살아간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흔히 생각을 좁힌다. 이제 중년이 되었으니 유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가벼운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보여주듯, 청년과 노인이 똑같은 행동을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50, 60이 되어서도 청년답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생각과 일에 도전해 보아야 한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당신이 더 이상한 거지.
나는 좀 특별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특별한지 아닌지는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뛰어난 사람을 보고
자기는 도저히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패한 거야.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인간만이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자격이 있지.
 
 
나는 살아 있는 한 뭐든지 해볼 생각이야.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할 일은 해야지.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간단히 인생을 포기하지 말라구.

 

 

내일 죽더라도 오늘 무엇인가를 해 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노인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것을 해보았으니, 지금 새로운 것을 하다 실패해도 별 문제는 없다. 모든 재산을 걸지만 않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