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노후설계

“우리는 인류 첫 장수세대…역효도법 배워야 해요”

이예경 2015. 6. 8. 15:00

“우리는 인류 첫 장수세대…역효도법 배워야 해요”

고광애 씨.

★노인문제 전문가 고광애 씨
“우리는 장수시대를 경험하는 인류 최초의 세대입니다. 수명이 길어져서
행복할지 모르지만,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고령의 시대를 처음 겪어야 합니다.
선례가 없어 불행한 세대이기도 하죠.”

그는 ‘역효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해주는 것이 효도라면,
부모세대가 자식들에게 잘해주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식들 걱정 덜 끼치고 부모
봉양 시기를 줄여주고, 안 받는 것이 역효도다.
 
“장수시대는 자식들이 부모 속을 썩여가며 자라오던 세월보다 부모가 다 늙어서
건강, 경제, 돌봄 등으로 자식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세월이 훨씬 길어졌어요
자식들의 눈치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죠?”
 

팔순이 멀지 않는 그가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장수시대의 노인들의 처세술은
죽음에 대한 생각도 바꿔 놓는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깔끔하게 죽어야 하는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영화감독 임상수씨의 어머니이고, 남편 임영씨는 유명한 영화평론가였다.
지난 4월 유명을 달리한 남편의 장례를 치르며 고광애(78·사진)씨는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세대차이와 공감이 없음을 실감했다. 
 

최근 ‘1세대 영화평론가’ 남편 장례 때
임상수 감독 등 자녀들과 의견차 절감
올 78살 체험 담긴 ‘노년처세술’ 펴내

신문기자 출신 사내결혼 뒤 전업주부로
쉰살 때부터 ‘나이듦’ 공부해 저술가로
“효도 총량도 불변…자식 의존 말아야”

“고광애, 나를 사랑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그럼요”. 아내의 대답에 남편은 웃음을 지으며 부탁을 했다.
“쓸데없이 내 생명을 늘이려구 애쓰지마. 인공호흡 같은 것 하지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편은 말했다. “알았어. 걱정마.”
 

남편은 ‘빵점 남편’이었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취직한 신문사에서
남편을 만났다. 사내 연애가 어려운 시절이라 1년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됐다. 남편은 기자를 하다가 영화평론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가정적이진 않았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사랑했다. 은퇴한 뒤 뒷산을 하루
세시간씩 걸으며 건강을 지키던 남편은 어느날 넘어져 고관절이 으스러졌고,
입원한 지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좋은 죽음을 보여줬어요.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도 않았고, 정신줄을
놓지 않은채, 병상에서 비교적 짧게 있다가 갔어요. 그런 남편을 보며서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다’는 말이 있듯이 끝에 가서 잘 죽은 남편은 잘 산
인생이 돼 버리더군요.”
 

고씨는 남편의 장례식을 두고 2남1녀의 자식들과 갈등을 빚어야 했다.
 “장례를 치르는 3일동안 24시간 자식들과 함께 지냈어요. 평소에는 가끔
보기 때문에 못 느꼈는데, 정말 의견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그는 그때 결심했다. 이제는 자식들을 가르치려 애쓰지 말고 자식들에게
맞춰서 살기로….
 

그의 아버지는 일흔에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여보, 나이 6,70 넘어 남편이 가면 과부가 됐다는 창피함 안 느껴도 돼.
떳떳하게 10년만 더 살다 오시게.” 어머니는 93살까지 ‘떳떳하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고씨는 쉰살이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성장해 떠나버리고
부부만 남은 집안은 적적했다. 그래서 나이가 드는 것이 무엇인지 공부했다.
영어로 된 원서까지 읽고 관련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지식을 넓혔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하고 싶어 책을 썼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 등을 출간했다.
방송에 고정 패널로 출연해 노인들의 고민 상담도 해줬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시작했던 공부가 그를 ‘노인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는 이제 노인의 권력은 사라졌다고 이야기 한다. 아니 노인들의 권위가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인이 너무 흔해졌고, 먼저 살아온
노인들이 터득한 지식이 젊은이들이 거들떠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새로 쏟아지는 지식들을 날이 저물도록
배워야할 판입니다.” 그래서 그는 노인들에게 당부한다.
 “명령권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지시하고 충고하던 타성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부모의 권위도 발휘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자식
며느리 눈치보기도 바쁜 세상이 됐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지켜야 할 것도 있다. 바로 노인으로서의 정서적인 권위다.
 젊은이들이 아쉬워서 만저 찾아와 물어보면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그는 ‘효도 총량 불변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자식들이 갖고 있는 효심엔
일정한 양이 있다는 것이다. “칠순에 돌아가신 아버지 죽음 앞에선 슬픔을
주체하기 어려웠으나, 아흔셋 어머니 때는 담담했어요. 100살 장수시대의
비극은 청·장년기는 늘어나지 않고 노년기만 길어지고, 자녀들 효심의 총량은
길어진 목숨만큼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효심이 고갈됐을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는 깨끗이 접고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 해요.”
 

그는 분유보다 머리 염색약이, 아기 기저귀보다 성인 기저귀가 더 많이 팔리는
시대의 노인들에게 당부한다. 누가 초대해도 세번 이상 권해야만 가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면서, 육체에 대한 의무인 건강에 무심하지 말라고. 또 지하철 노인석을
아예 없애자고 말한다. 노인과 젊은이가 섞여 앉아야 불필요한 갈등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장수시대에 노인들의 처세술을 담은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바다출판사)를 펴냈다. 나이를 그냥, 막 먹어선 안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20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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