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윤재천 수필가의 ‘나의 인생, 나의 문학’

이예경 2013. 8. 7. 19:00

윤재천 수필가의 ‘나의 인생, 나의 문학’


윤재천 수필가는 2012년 9월 14일(금) 오후 2시에 대한민국예술인센터 8층 회의실에서 문학특강을 열었다.

저의 삶의 길에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시간,

둘째 돈에 대한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셋째 믿음을 잃지 않는 삶에 대한 태도를

저는 물론 동호인에게도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런 신념으로 팔십 평생 수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수필가는 솔직해야 합니다. 
경기도 안성 궁벽한 시골에서 1932년 태어나 그 가난했던 시절의 꿈은 조그만 과수원 주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성에서 농업학교를 나와 서울 농과대학에 갔는데 농사일이 영 맞지 않아 중대 국문학과에 편입하고 수필과의 만남이 되었습니다.

4학년 때 조병화 선생님을 만나고 대학원에서는 문학평론가 백철 선생의 조교로 만났습니다.
수필가의 길을 걷는 것도 그 두 분의 영향입니다. 믿음으로 대해주신 두 분 선생을 존경하며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1950년대 피천득의 수필은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평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지금 수필가는 많으나 젊은 독자가 없습니다. 한국문협 수필등록자가 3,000명이 넘었고 등록하지 않은 수필가까지 하면 10,000명이 넘을 것입니다.

창의성이란 다른 것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란 무엇인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1976년생 김경주 시인의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가 2006년에 나와 17,000부가 나갔다고 합니다. 이 시는 문법을 무시한 글입니다. 이제 수필도 변해야 합니다.
노무라 증권은 27,000명 직원이 70개국 인종으로 10,000명은 외국인, 17, 000명은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우리 삼성그룹도 700인의 외국인이 43개국에서 왔다고 합니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이 된 것은 다민족의 어울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융합, 접목으로 퓨전 수필을 냈습니다. 수필계도 과거에 집착하기만 하면 안 됩니다.

융합하고 접목해서 새롭게 더 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수필은 나의 외골수 행복입니다. 57년 동안 수필의 길만 걸었습니다. 이 행복이 면면히 흘러 강줄기로 남기를 희망합니다. 《수필 아포리즘》은 125장을 썼는데 세종대왕 용비어천가가 125장이라 2장을 빼놓고 123장으로 끝맺었습니다. 123장, 123페이지의 수필입니다.

대학원 시절에 처음 저에게 잡지사 기자가 수필 한 점 써 달라고 부탁해서 썼는데, 그때 저는 수필을 가볍게 보았습니다.
이것은 15페이지밖에 안 되는 197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명부입니다.
1971년 회원명부는 지금 국제 펜대회가 열리고 있는 경주 전시회에 가 있습니다.
1971년 조경희, 전숙희, 천경자, 김남중, 안충근……저는 16번째 수필분과 회원으로 입회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것을 너무 소홀히 합니다. 펜클럽에도 이 명부가 없습니다. 경주에 가 있는 명부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수필가는 몇 번이나 퇴고를 합니까.
소리꾼 장사익은 46세에 수없이 많은 연습의 결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시 한 편을 쓰면 100번을 고쳐 쓴다고 합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는 6개월 글 쓰고 6개월 고쳐 쓴다고 합니다.
《아포리즘 수필》은 원고지 5매 안쪽입니다.
앞으로 5매 수필이나 단(短)수필은 모두 ‘아포리즘 수필’로 묶고 싶습니다.

1917년 1월 1일 매일신보에 발표된 근대소설의 시초인 이광수의 《무정》은 심한 반대와 질타를 받았습니다.

유교 쪽으로부터 남녀가 만나는 내용이라고 비윤리적인 작품이라고 총독부에 진정서가 들어갔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나 해수욕장입니다. 지하철에서도 남녀가 끌어안고 뽀뽀하는 시대에 누가 고답적인 수필을 읽겠습니까.

자기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합니다.
거리에서 리모델링한 건물을 보니 그 건물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발뒤꿈치를 보셨나요? 《피에타》그 사람만의 브랜드입니다.
신문에서 경제면도 보아야 합니다. 요즈음은 통합시대, 융합시대, 접목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남녀가 걸어가면 남자가 앞에서 걸어가고 여자는 뒤쫓아 갔는데
요즈음에는 외국인과도 떳떳하게 나란히 걸어갑니다.

저는 4호선 전철을 타고 삼청공원, 북촌, 인사동을 자주 가봅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지요. 만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그림을 모았습니다. 피카소는 명암법 원근법을 무시한 화가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이 6개월마다 달라요. 25살 피카소가 37살 마티스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마티스의<푸른 누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의 그림은 ‘저 미친것들!’이라는 욕을 먹었는데 1년 후에 야수파의 시조, 입체파의 시조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장한나의 스승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도 장한나에게 ‘너의 브랜드를 열어가라’고 했습니다.

수필가도 자기만의 소질의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남이라는 것을 깊이 참고하여 자기만의 창의성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역사, 예술, 경제 등 인문학 계통을 많이 섭렵해야 합니다. 요즈음 인문학 교수들이 잘 팔리는 시대입니다.

2010년에《퓨전수필을 말하다》를 내놓았습니다.

푸른 잔디 깔아놓고 통나무집에 감나무 대추나무 빙 둘러 심은 과수원 주인이 되는 꿈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군청의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소사가 집에 심부름 오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57년 동안 수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 용재를 제가 써먹으려고 심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수필나무를 심는 사람입니다.

골방수필을 벗어나 퓨전수필, 아방가르드 글쓰기, 마당수필, 융합수필 같은 실험수필, 그 외 도전형 작품 등 나의 교수법으로 수필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아방가르드입니다. 뿌리는 소중히 지키며 접목하고 다듬고 가꾸는 해체를 통한 융합, 융합을 통한 해체로서 옛것도 중요시하고 시대를 앞서 가는 수필 쓰기를 지향했습니다.
이미지 적으로는 시적이고 내용은 소설적 메시지가 있고, 작가의 철학적 사상이 한 편의 수필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20세기에는 마돈나, 마릴린 먼로시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아이콘이라면

 21세기는 레이디 가가의 하이퍼 모더니즘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처음 열린음악회에서 박인수 테너가 ‘향수’를 불러, 교수와 학생들이 난리를 피웠고 많은 지탄을 받았지요.
지금은 열린음악회에서 주교도 노래하는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노력하세요, 발견하세요, 도전하세요. 나의 수필관은 분명합니다.
저는 시인 차윤옥, 희곡작가 신봉승, 소설가 정종명, 다 좋아합니다. 늘 가깝게 지냅니다.

1992년 《현대수필》창간하고 1년간 등단작가를 배출하지 않았습니다.
1993년도에 2명의 등단자를 배출하고 그 후 지금까지 3명씩 내며 등단자 배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20년간 올해로 제20호《수필학》을 비매품으로 발간하여 수필을 사랑하는 작가와 도서관에 보내고 있습니다.
1968년 상명여자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학과장이 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수필문학론’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평생 수필학을 세우고 수필나무를 세운 것을 자랑으로, 긍지로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수필학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했는데 지금 와서는 많이들 잘했다고 합니다.

2001년 12월 1일 양평 <힐 하우스> 아래 카페<참 좋은 생각>에서 조병화 유경환 정목일 지연희 씨 등과 함께 43명이 ‘수필의 날’ 선포를 했습니다. 이 행사는 6년 동안 《현대수필》에서 주관하다 7회부터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에서 범(汎)수필계 행사로 해마다 열립니다.
2012년 수필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수필 아포리즘이 발간되기까지는 그 발자취가 5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인사동에 가서 멍석을 깔고 수필 퍼포먼스를 열고 싶습니다.
저의 이 아이디어를 젊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번 국제펜클럽대회에 외국에서 200명 등 모두 900명이 참석했습니다.
여러분 글에는 욕심을 내고 다른 면에서는 양보하는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진리도 바뀌는 세상, 정답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필은 자기 형식, 자기 답이 정답,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개성이 있는 작가, 끼가 있는 작가, 철학이 있는 작가, 새로움에 도전하는 작가
이 시대는 창의력의 변화, 상상력과 도전을 요구합니다.

- 이 표시는 윤재천식 문장부호로 곧, 즉, 또한의 뜻으로 씁니다.

윤재천 수필가 약력
경기도 안성 출생 전 중앙대 교수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발행인
저서 :『수필문학론』『수필작품론』 『운정의 수필론』
『나를 만나는 시간에』『처음과 끝 그리고 그 사이』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 『또 하나의 신화』
수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등


작성 민문자

'이야기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국시 전쟁시  (0) 2013.08.09
윤재천의 수필론 강의  (0) 2013.08.07
수필정석13<손광성의 문학강연>  (0) 2013.08.07
[수필작법]수필의 일상성/김은주  (0) 2013.08.07
여름휴가 셋째날에  (0) 201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