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무슨 성교육” 했던 60대 “여자 마음 더 알고 싶다”
[중앙일보] 2012년 05월 14일
12년 전 부인과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혼자 사는 박민수(62·가명)씨. 댄스스포츠 동호회에서 여자친구인 김정숙(57·가명)씨를 만나 사귄 지 6개월째다. 박씨는 최근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실버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 성교육을 받나. 젊은 시절의 성지식으로도 충분하다”며 시큰둥했지만 성병 예방 등 구체적인 지침을 배워 올바른 성생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시니어 모임에서 또래 노인들과 남녀심리탐구서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읽는다. 여자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강신영 실버 성교육 강사는 “노년의 성(性)은 성관계뿐 아니라 친밀한 접촉과 건강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며 “노인의 성은 아는 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거절당하면 마음의 상처로 우울증 생겨 노년의 로맨스가 건강에 도움을 주지만 보수적인 남녀 관계에 익숙한 노인 중 헤어지고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태희 교수는 “노년기에는 질병이나 죽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실연이나 이혼을 당하면 움츠러들고 두 번 다시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기에는 거절의 고통이 우울증 등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때는 당사자의 상황을 지지하고 이해해 주는 동료·집단·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교수는 “이성 교제나 대인관계의 장을 만들 수 있는 집단에 참여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때 모임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복지관·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실버 미팅’이나 취미활동을 즐기는 집단에 소속돼 활동하면 좋다. 명상이나 사색·자서전을 쓰는 일도 도움이 된다. 감정은 무조건 억누르지 말고 적당히 표현해야 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대뇌피질에서 담당하지만 감정을 통제하는 기관은 변연계다. 변연계는 심장·위장·자율신경 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쳐 감정을 쌓아두면 병이 된다. 특히 슬플 때는 우는 게 좋다. 눈물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때 나오는 카테콜라민이라는 성분이 배출된다. 이 성분은 체내에 쌓이면 만성 비염과 같은 소화기질환을 일으키기 쉽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여 심근경색이나 동맥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자녀 등 가족의 반대에 부딪힐 때도 힘들다.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준혁 교수는 “자녀는 노인을 부모로서가 아닌 한 남성·여성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의 독립성을 존중해주듯 노인의 자발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생기거나 음성적인 성문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성병 급증, 성 상담 등 전문가 도움 받아야 노인 성병도 주의해야 한다. 일본 국제의료복지대학 간호학부 윤옥종 교수는 “노인은 성생활을 할 때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 성병을 등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65세 이상 성병 환자는 12.7%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65세 이상 여성은 연평균 증가율이 14.6%로 남성(9.7%)보다 4.9%포인트 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성병의 종류는 ‘임질’이 50.0%로 가장 많았고, 요도염(질염) 17.2%, 사면발이 5.7% 순이다. 성병 치료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성병인지 몰라 방치하거나 창피하다는 이유로 치료받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서동애 실버 성교육 강사는 “병원에서 약을 먹으면 쉽게 나을 수 있는데도 수치심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성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노인의 성이 삶을 파괴하는 음성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전혜원 과장은 “노인의 성생활·성병·성인용품 등에 대한 정보는 물론 노인 이성 문제를 상담하는 곳이 있으니 서슴지 말고 도움을 청할 것”을 권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전국 13개 노인 성상담실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어르신상담센터(02-723-1885~7), 노인 성사랑센터(032-679-6772~4) 등이 있다. 지역 노인복지관이나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02-702-6080)에서 문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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