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설레었지요
황인숙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지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란운도 숲처럼 움직였지요
나는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가끔 말을 멈췄어요
그러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췄어요
그들은 나보다
한발 뒤에 움직였어요
달린다, 달린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우리는 움직임으로 껴안았지요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안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립니다
전신이 팔다리에요
바람이 자기의 달림을
내 몸이 느끼도록
어둠 속에 망토를 펄럭입니다
나는 집안에서
귀기울여 듣습니다
바람은 달립니다
어둠의 겹주름 속을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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