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시 산책

이 순간 / 피천득

이예경 2011. 3. 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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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 이 순간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 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현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현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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