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노년의 욕심인가? -다문화가정상담사

이예경 2010. 10. 21. 14:47

노년의 욕심

 

해외여행을 다녀 집에 오는 길에서는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여행을 떠날 때는 즐거운 기대로 가득차지만 마음이 가벼운데

돌아오는 길에는 밀렸을 일 생각에 좀 긴장되고 마음이 복잡하다.

견문이 넓어졌으면 뭔가 행동이 달라지고

철학도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다.

 

꺾은 100살에서 10년도 더 살았는데 뭐 별로 이룬 일도 없다

남들 다 하듯이 결혼해서 자식 키워 분가시키고 손자보고…….이렇게 늙었다.

그저 발등의 불만 끄면서 허겁지겁 무위도식으로 여태 살아온 것 같아서

왠지 허전할 때가 있다

 

최근 십년간에 아들딸을 분가시켰고 시어른 초상도 치루었고

차례로 나오는 손주들 셋의 산바라지도 해주었다.

주부9단의 지혜가 생긴 솥뚜껑 운전도 이제는 제법 간편해졌다....그런데,

 

앞으로 40년을 뭘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요즘 구순에도 허리 꼿꼿하고 건강한 노인들도 꽤 많던데

운 나쁘면 120까지 살 수도 있다는데....

이대로 있다간 밥벌레밖에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귀국 행 비행기 안에서 경제신문을 뒤적이며 오랜만에 여유 있게

기사를 낱낱이 읽어 내리던 중에 두 가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는 무료강좌인데 경매전문 부동산구입하는 법,

그리고 둘째는 다문화가정상담사 자격증에 관한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기사를 오려 손가방에 넣었다.

 

나의 텅 빈 머리에 쏙 들어온 그 두 가지는 집에 도착하여 가방을 풀면서

어찌된 일인지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모르던 분야라 호기심이 동했나보다.

 

다음날 역삼역 그곳에 가보니 경매전문부동산 학원이었다.

강의실에는 수강생이 남녀 반반인데 나이도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해보였다

화려한 옷차림에 부티나는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은 부인들이 눈에 띠는데

자신감에 찬 표정이 왠지 육식동물들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흘간 계속된 강의를 들어보니 모르던 분야에 지식이 생겼고

마음만 냉철하게 먹으면 못해볼 것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 몇몇이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 같이 부동산 물건도 보러 다니고

같이 토의하고 연구하면서 거래를 하여 크게 목돈을 만들었던 사례를 많이 알려준다

여러 가지 전문적 지식과 요주의점 등을 아주 세세하게 강의해주었는데

쉬운건 아니지만 수익률이 그렇게 높다면 기를 쓰고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그 과정들을 상상해보며 큰돈을 손에 쥔 자신을 그려보았다

그런데 기분이 흐뭇해야 할 것 같은데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돈을 피해가겠다는 것인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는 나는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를 선택한다.

책을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마음을 접었다.

 

다문화가정상담사 자격증 시험 교재를 보니 네 과목이다

아동생활지도론, 인간관계론, 상담과 심리치료, 다문화가족복지론…….

요즘 혼인신고자의 10%가 외국인 배우자와의 만남이며 불법다문화가정도 많고

결혼 후 가정문제가 많아 상담사가 태부족한 실정이란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계속 늘어나는데 언어문제 가정문제로 부적응 증세가 많단다

마침 출산율이 떨어진 현실에서 그 애들을 한국인으로 키우는 문제도 시급하다고 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응시할 수 있다며 1회시험에는 퇴직교원들이 많이 합격했다고 한다.

 

딸애는 수필가로 글 쓰시면 되지 뭘 새로 시작하려냐고 처음엔 난색이더니

마음을 바꿔 긍정적으로 나를 격려해주기 시작했다

상담사 일이 취미에 맞을 뿐 아니라 사무적인 일도 익숙하지 인생경험도 많지

성격도 따뜻하지 미국생활 6년에 영어도 좀 통하지 .....엄마는

해외여행경험으로 시야도 넓으니 잘 하실 것이라 한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나는 비교적 공부가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졸업한지 40년이 넘었지, 계속 터지는 집안일로 공부시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웬만한 모임이나 일거리는 젖히고 틈틈이 책을 잡아보았다.

 

세월이 갑자기 빨리 가는 것 같다. 시험날짜가 코앞에 다가왔다.

수험표를 받아들고 10월 16일에 시험을 치르러 덜레덜레 걸어가면서

51년전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나이만 들었지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아침에 찰밥도 안 먹었고

누구하나 내게 관심 두는 사람도 격려해주는 이도 없지만 마음은 담담했다.

 

딸애가 시험잘 보았느냐고 묻기에 수험생들이 반 이상은 젊은 사람들이더라.

취직될 때는 그들이 우선적으로 뽑혀갈 것이 뻔하니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더니

상담직엔 젊은 사람이 인기가 없다며 위로를 해준다.

......시험 합격발표도 안 났는데 좀 앞서가고 있다.

어쨋던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험에 떨어지면 합격할 때까지 재시험을 볼 것이다.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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