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세뱃값

이예경 2010. 1. 29. 01:20

 

 

달력을 보니 설이 2월 14일이다

벌 써 2주밖에 안남았다

 

전 같으면 대청소를 시작해야할 때인데 웬지 의욕이 안난다

벌써부터 씩씩한 며눌에게 기대기 시작인가?

 

내 시어머님은 65세가 되는 설부터 손을 딱 놓으시며

내집에서 모두 차리라고 하셨었는데....

이제는 동생 가족들이 모두 내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내집에서 차리게 되니 다 오면 합이 25명....

 

시어머님이 향년 87세시니

내집에서 설을 준비한게 벌써 20여년이다

65세 당시의 어머님께는 며느리가 넷이나 있었는데

내게는 하나 뿐인데다 시동생네 식구들까지 오니까 25명

....내가 훨씬 일이 많다

게다가 어머님은 한집에 살아도 병환으로 일을 돕지는 못하시니.....

 

작년에 설 전날에 세뱃돈 몇십만원 달라고 해서 신경이 쓰였던 나는

어머님께 올해는 미리미리 준비하자고 건의를 올렸다

자손들 24명에게 한꺼번에 각자에게 맞는 성경귀절을 찾아주기 힘드니

지금부터 하루에 한명씩 말씀을 적어놓기를 건의했다

"레마 말씀" 구하는 법도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내 말에 동의를 해놓으시고는

사흘도 안되서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띠워드리며 권사님께서 못하실 리가 없다고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받으실 것이라고

 

남들은 남들 이웃들에게도 기도해 주는데

어머니는 자손들에게 1년에 성경 한귀절 못 나눠 주시냐고

하루에 한명씩 기도하고 말씀 구하는 정도인데 뭘 그러시냐고

계속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을 것을 확신하는 나는

"하루에 한사람씩"을 강조하며 밀어 붙였다

글씨는 귀절을 다 쓰지는 마시고 몇장몇절 숫자만 쓰시라고

내가 대필을 도와 드린다고 하였다

 

내가 여행 때문에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는 성경과 씨름 께나 하셨던 모양이다

집에 오자마자 공책을 내밀며

자손들 이름과 성경 몇장몇절이라 쓴 것을 보여주었다

절반 정도는 메꾸신것 같았다

 

낯을 찡그리며 그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고

더이상은 못하겠으니 날더러 알아서 하라고 불평이시다

내가 난처한 얼굴을 하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더니

 

사실은 딸에게 하소연하여

쓸만한 성경 귀절들을 몇장 프린트해서 갖다주기로 하였단다

그러더니 며칠 후 성경귀절을 쓴 종이를 받아왔다

어머니는 그걸 한귀절씩 가위로 다 오리더니

종일 보고 또 보시고 그 옆에다 연필로 이름을 썼다

내게는 그 쪽지를 봉투에 담아서 그냥 주겠다고 하셨다

 

엊그제 그 쪽지들과 공책에 쓴거

모두 받아서 내방에 가지고 왔다

워드랑 엑셀로 정리하면서 보니까

어떤이 것은 없고, 몇몇에게는 두세마디식 놓았고

겹치게 한것도 있고....너무 아닌 말씀도 있고....도통 정리가 안되어있다

 

그런 중에도 어떤 내용은 가슴치게 딱 맞거나

예언적인것 등 대단함이 느껴지는게 있었다

주로 아들들에겐 꽤 성의가 있었고

며느리가 그 다음 순위고 손주들 것은 대충, 별로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하나 잘 하시려니까

골치가 그렇게 아프셨던 거구나

한줄 말씀만 필요해도 앞뒤를 읽어 문맥이 되야하니

말씀을 고르면서 눈도 아프셨을 것이다

 

나는 너무 긴 말씀은 요점 정리해서 고르고

빈칸엔 내가 기도해보고 귀절을 넣고

성경내용 숫자만 적힌 것을 하나하나 찾아서 글씨를 넣고

상장 만들듯이 틀을 만들어 모양을 내서 문서를 만들었다

 

만들고보니 흰종이에 글씨만 있는게 밋밋해서

클립아트를 찾아 복주머니나 한복입고 세배하는 그림등을 넣었다

2시간이면 되려니 했는데 오전 내내 해도 끝이 안나고

결국 오후 7시가 되서야 프린트까지 끝났다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고 대만족이시다

내 막내딸도 내옵빠도 잘했다고 해주었다

 

아직 봉투에 담는 일이 남았지만

한시름 덜었다

 

어휴!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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