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할머니 사진

이예경 2020. 9. 1. 11:10

<흙이라도 한 삽>  나의 할머니, 먼 곳에서 온 귀한 사진이다. 

<흙 한 삽의 소망>

 

사진의 주인공은 나의 할머니, 먼 곳에서 온 귀한 사진이다.

고향이 이북인 아버님께서는 항상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루시며 어머님 소식을 궁금하게 생각하셨는데, 어느 날, 우리 부모님에게도 흥분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에 사는 친척이 이북에 있는 고모와 조카들의 주소를 전해온 것이다. 그들과 미국을 통한 편지왕래로 아버지는 2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듬해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동생의 소식을 알았고, 어머니의 유언도 전해 들으셨다.

 

아버지의 향수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47년 전 11살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여동생의 편지를 읽고, 또 읽고, 할머니의 증명사진을 보고 또 보고, 끝내는 손바닥크기로 확대 복사하여 액자에 끼워놓았다. 시집간 딸들에게도 그 액자를 복사해 주시면서 거실에 걸어놓으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할머니 본 느낌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신세대인 동생이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이 된다. 처음 보는 길고 여윈 얼굴, 근심 어린 눈빛, 깊이 패인 주름... 어찌 보면 사진이 아버지와 닮아 보이지만 표정이 슬퍼서인지 내가 상상하던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집에 걸어놓고 며칠 보니까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찌 슬프지 않았으리..... 19466월에 장남과 셋째아들을 남으로 보내놓고 19755월에 당년79세로 돌아가신 날까지 30년간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여 남쪽하늘 쳐다보며 한숨만 지으시다 유언을 남기신 할머니. “남으로 간 아들들이 살아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올 것인데, 이제 살아생전에는 두 아들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구나. 훗날 그들이 찾아오거들랑 내 무덤에 흙이라도 한 삽 얹어 달라 일러라하셨다니 말이다.

 

아직도 어머님 묘소에 흙 한삽 조차 얹어줄 수 없는 남북의 현실에 슬픔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며 내내 통일을 염원하시던 아버지께서는 19945월에 훨훨 날아 할머니를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을까. 미국 시민으로 59년을 사셨던 셋째아버지께서는 19988월에 어머니와 큰형님을 그곳에서 만나 손잡고 회포를 푸셨을까.

 

아버지의 장례식 당시에는 오로지 슬픈 마음뿐이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세 분이 만나 반갑게 웃으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분들을 만나 뵐 수는 없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냥 하늘나라로 이사를 하신 거라고, 그래서 할머니는 두 아들과 함께 외롭지 않을 거란 상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도 그 옆에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