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송광사와 선암사 일원
조계산은 동쪽에 선암사, 서쪽에 송광사를 품고 있다.
높이가 884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천년고찰 두 곳이 소재해 있고
광주의 무등산,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호남의 3대 명산이라고 불린다.
이 세 산은 한반도 서남 지역에 삼각형을 형성하고 있는데 조계산은 동쪽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끝자락에 솟아 있지만 산세는 그다지 험준하지 않으며
산 전체가 숲으로 덮여 있어 사시사철 숲이 변화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봄꽃으로 덥힌 신록의 조계산 전경이다.
조계산이라는 명칭은 본래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당나라 남종선의 시조로 불리는 대감선사(大鑑禪師) 혜능(慧能, 638~713)이 육조(六祖)를 제수받고 돌아가던 중에 소조부(광동성 곡광현)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살던 조숙량이 선사를 흠모하여 쌍계원을 짓고 스님으로 모셨다. 혜능선사가 머무른 이 산의 이름을 조숙량의 성에서 ‘조’를 취하고 쌍계원에서 ‘계’를 택하여 조계산이라 명명한 것이라 한다.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조계산은 이러한 유래가 있다. 고려시대인 1208년(희종 4)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사를 세워 승풍을 쇄신하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펼쳤다. 유년기에 스승이었던 지눌의 가르침을 받은 희종이 이 소식을 듣고 ‘조계산 수선사’라는 편액을 내린 이후로 이 산을 조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선암사 사적비(1929)에는 고려 고종 때의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를 중창하고 산의 이름을 조계산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기록을 통해 볼 때 조계산이 고려시대에 명명된 이름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는 듯하다. ‘조계’라는 이름은 이곳을 중심으로 중흥을 이루어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종파를 형성한 조계종의 명칭이 된다.
조계산에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인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송광사는 삼십일본산[일제강점기에 전국의 사찰을 31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본산(本山)을 두었던 제도] 중에서도 매우 규모가 크다. 송광사는 770년경 신라의 혜린대사가 처음 창건했는데 이후 불교의 중흥조인 보조국사를 비롯해 무려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 즉 삼보 중에서 스님은 불교를 지속적으로 전승하는 보물인데 이처럼 많은 국사가 나오면서 송광사는 승보사찰의 명예를 얻게 되었다.
조계산의 서측 품안에 자리하고 있는 송광사의 풍경이다. 신록과 화사한 꽃으로 덥힌 봄의 조계산이 청량하고 아름답다.
송광사는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절의 이름이 연유되었다고 한다. 송광(松廣)이란 ‘십팔공(十八公)이 배출되어 불법을 널리 펼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것은 송(松)자를 파자하여 18명의 공으로, 또한 광(廣)자를 불법으로 널리 펼친다(佛法廣布)는 의미로 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송광사의 유래로 가장 신뢰성이 높은 것은 이 지방 사람들이 이 산을 솔갱이, 솔뫼라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송광사가 승보사찰이라는 점에서 볼 때 ‘송’을 ‘십팔공’으로 보는 파자 전설은 일리가 있다.
송광사는 조계산 서쪽 신평천 계곡의 우거진 수림 속에 많은 절집들이 가로세로 정연하게 모여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특히 조계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절집을 감돌아 나가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 맑은 물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청량한 수도 도량의 품위를 한층 드높이고 있다. 연산봉의 서쪽 장박골, 피아골, 홍골에서 모여든 계곡물이 우화각의 돌다리 아래를 지나 청량각으로 향하는 곳은 송광사의 백미를 이룬다. 이곳의 계류는 임경당 앞에서 물줄기가 막혀 작은 못을 이루고 있는데 비가 와 수량이 많아지면 물이 넘쳐 하류로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화각 아래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절집과 연못이 어울린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송광사의 우화각과 삼청교 주변은 계곡에서 흘러온 물과 함께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송광사의 반대 방향인 조계산 동쪽 산기슭에도 삼십일본산의 하나인 선암사가 위치하고 있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으로 처음 개창했고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가 절집을 창건해 선암사로 명명했다고 한다. 사찰의 서쪽에 10여 장 높이의 크고 평평한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 하여 선암(仙巖)이라 불렀으며, 이 바위의 이름에서 선암사의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선암사는 입구에서부터 특별한 모습을 보여준다. 입구의 주차장에서 한적하고 넓은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승선교(昇仙橋)다.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는 아치형의 다리로 조선 숙종 39년(1713)에 지어졌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용어지만 과거에는 ‘무지개다리’라는 뜻의 홍교로 불린 형식이다. 승선교의 반원형 홍예(虹預)는 매우 아름다운 곡선을 나타낸다. 승선교 위에 서면 정말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위쪽에는 강선루(降仙褸)가 자리하고 있는데 승선교의 홍예를 통해 보는 강선루의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 같다.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지나 진입로를 계속 오르면 둥그렇게 생긴 연못인 삼인당에 다다른다. 긴 알 모양의 섬이 한가운데 위치한 형태로 862년(경문왕 2) 도선이 축조했다고 한다. 삼인이란 삼법인, 즉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하는데 삼인당은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도선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으로 안에 섬이 조성되어 있다. 안에 있는 섬은 ‘자이이타’, 밖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를 의미한다.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조계산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조계산의 양쪽에 유명한 천년고찰이 자리하고 있어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혹은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 산을 넘어간다.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에서 범바위와 장박골로 이어지는 등산로, 연산봉과 피아골로 통하는 길, 남쪽의 굴목재를 넘어 홍골로 통하는 등산로 등이 조계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특히 굴목재 남쪽에 우뚝 솟은 천자암산에 위치한 천자암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가 신비스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명 곱향나무로도 불리는 쌍향수는 마치 굵은 엿가락을 비틀어 감은 모습을 하고 있다. 두 개의 줄기가 똑같이 왼쪽 방향으로 나사처럼 감고 있는 형상인데 그 모습이 매우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천자암 쌍향수는 줄기가 나선형으로 감아 오르며 자란 특이한 향나무다. 이광춘 명예교수 제공.
조계산은 산역이 넓거나 높이가 큰 산은 아니지만 고찰과 함께 많은 문화재를 지니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국보로 지정된 목조삼존불과 국사전, 보물로 지정된 경패, 하사당, 약사전 등 송광사에는 다수의 문화재가 있으며 선암사에도 승선교, 삼층석탑, 선암매 등이 있어 조계산은 그야말로 호남의 명산이란 이름에 걸맞은 명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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