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 길을 나선 것은 삶의 사소한 선택이나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남편의 오랜 벗을 동반한 대식구가 나선 2박 3일의 짧은 일정은 빛나는 길의 여행이었다. 박정대 시인이 말한 것처럼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산맥을 돌아보는 기회였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동쪽인 맘모스 레이크를 들러서 산을 넘어 서쪽의 요세미티를 보는 것으로 여정을 잡았는데 양쪽에 위치한 동과 서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스산(4418M)을 비롯한, 고봉들이 140개나 있는데 에스파냐어로 ‘눈으로 뒤덮인 산맥’을 뜻하는 만큼 사철 눈이 쌓여 있다. 산맥의 높이만큼 경계는 견고하여 동과 서는 극명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서쪽은 요세미티를 비롯한 세코야와 킹스 캐넌 등의 국립공원들이 있고 동쪽은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쓰 밸리나 흔적만 남은 오웬 호수 등이 남아 있다. 이렇게 완전히 나뉘어진 두 세계는 인간의 역사와 닮아있다고도 느껴진다.
동쪽의 맘모스 레이크로 가는 길에 만난 오웬 호수는 바닥까지 말라서 뿌옇게 변해있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은 산맥의 높은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수분을 모두 서쪽에 뿌린 채 메마르고 건조한 바람만이 동쪽으로 넘어간다. 다행히 높은 산에서 눈 녹은 물이 한 여름에도 흘러내리지만 그 물줄기를 LA시로 가져갔기 때문에 물꼬가 막힌 텅 빈 호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길마저 빼앗겨버린 그 곳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오웬 호수가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해본다. 휘트니포탈 야영지에서 내려다보니 구불하지만 길게 이어진 길 하나가 황량한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갔기 때문에 길이 된 것이다’는 작가 루쉰의 말처럼 그래도 길이 있어서 희망이 시작된 것이고 그 길은 산맥의 동쪽으로 오래도록 나 있었다.
맘모스 레이크는 호수 이름이 아니라 작은 도시 이름이다. 겨울철 휴양지로 유명하다지만 우리는 거꾸로 여름에 찾았는데 여행과 인생의 닮은 점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동 경로를 반드시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인생도 때로 거꾸로 가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듯 어느 날 미국에 온 우리에게 변화와 선택은 삶의 지점마다 놓인 과제였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인생에는 예견된 정확한 표지가 없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자신만의 여행을 꾸리듯 인생도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여름 풍경은 위대했다. 다음 날 맘모스 레이크의 정상에 올라보니 8월의 햇살은 뜨겁기조차 한데 하얀 눈은 거기 약속처럼 남아 있었다. 깊이 쌓이면 쉬이 허물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직도 눈은 옹골찬 깊이로 단단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봉우리를 만들고 눈을 쌓아 자신만의 물기를 지녀야 할 나이가 된 아이들에게 한여름에도 강인한 이 눈은 생의 수분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리가 꿈꾸는 정상은 크건 작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깊은 눈을 쌓아둘 수 있는 봉우리만이 그의 영토 안에 호수 하나 가질 수 있음을 이번 여행에서 눈치채길 바랬다.
다소 가파르긴 했지만 길 옆으로 눈이 쌓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관통하여 동에서 서로 넘어갔다. 여행보다 집에서 컴퓨터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창 밖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친 길이 끝날 무렵 거기에는 믿을 수 없이 눈부신 호수와 초록의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우리 일행을 맞이하였다. 인디언 말로 ‘곰’을 뜻하는 요세미티는 아직도 어디선가 그들의 함성이 들려올 듯 생생한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 봄의 <세코야& 킹스캐넌> 여행에서 감탄했던 서쪽의 풍요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는 셈이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허기진 땅을 보다가 맛 본 요세미티는 절정의 달콤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해발 2.164M의 글래셔 포인트로 올라갔다. 아래로 요세미티 빌리지와 그 유명한 하프돔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마치 독수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글래셔 포인트에서 바라본 요세미티는 과연 유네스코에서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할만한 명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맘모스 레이크의 눈 쌓인 정상과 글래셔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통해 같은 산맥을 낀 두 지역 간의 엄청난 간극을 보고 있었다. 요세미티 반대편의 빈곤이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단지 가운데 산맥이 하나 있을 뿐인데.
풍요 속에서 빈곤을 생각한다. 지난 겨울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데쓰 밸리에 갔을 때 거기 하얀 눈길 같은 소금호수가 있어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 소금은 풍요의 바다에서보다 낮고 메마른 땅에서 피는 신의 꽃이라 여겼다. 그러니 내가 서 있는 생의 길이 건조하고 황량하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넘을 수 없는 숱한 시에라 네바다는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우리 집에서도 산맥은 나날이 솟아오르는데 서로 반대편의 입장이나 외로움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갈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벽을 조금이라도 허무는 일이 바로 이런 여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여행은 존재를 찾아가는 이동경로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지나면서 두 갈래로 나뉜 길의 운명을 생각해보았다.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며 소금에게 길을 물어야 할 때,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잠시 이동해야 할 경로를 더듬을 때 그럴 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떠올린다면 우리들의 여행은 삶의 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