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집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독일 뮌헨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로, 알프스 산맥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앞마당은 시원하게 탁 트여 있었고, 뒷마당부터 곧바로 산이 시작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의 기(氣)를 느껴보려 했다.
거실과 부엌, 가구에서 작곡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검소하면서도 편안하고, 아담하면서도 알프스 산맥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가장 큰 인상을 준 것은 물론 슈트라우스의 작업실이었다. 그가 작곡할 때 내다보던 커다란 창문 밖의 알프스는 마치 슈트라우스만의 '비밀 정원(庭園)' 같았다.
'인간' 슈트라우스와 '작곡가' 슈트라우스를 한 단어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나치와의 협력 문제 외에도 슈트라우스는 돈과 경력을 무척 중요시했고, 그의 일상 편지는 이런 세속적인 문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슈트라우스는 종종 '비즈니스맨'으로 표현된다. 반면 슈트라우스의 음악에는 환상적인 색채와 익살스러운 유머,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하늘로 치솟는 선율과 획기적인 상상력이 뼈대를 이룬다. 그의 인간성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도, 그의 음악에는 진심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슈트라우스의 작업실에 잠시 앉아서 알프스를 바라보았다. 이 자연 속에서 그는 속세(俗世)를 버리고 마음속 고요함을 되찾아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베토벤부터 말러와 슈트라우스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은 성격들이 저마다 괴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자연에서 휴식을 얻고 영감을 받으며 새로운 이상에 도전할 힘을 재충전했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음악도 자연과 같은 원리로 빚어진다. 음악적 아이디어가 씨앗이라면, 그 생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면서 음악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자라난다.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지만, 그 씨앗만은 여전히 자연의 DNA처럼 음악 속에 뿌리박혀 있다.
이런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음악적 DNA를 만들기 위해 작곡가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그토록 유명한 이유도, 모든 사람이 쉽게 이 씨앗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첫 네 음(音) '빠빠빠 빰'이다. 여기서부터 베토벤의 교향곡이라는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난 것이다. 브람스는 이런 DNA를 지니고 있는 교향곡 1번을 쓰기 위해 자그마치 17년을 노력했고, 그 결과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걸작을 남겼다. 명곡(名曲)들의 공통점은 이런 변화와 성장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빚어졌다는 점이다. 역사에 남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음악에 심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을 거듭했던, 위대한 음악의 비밀이다.
연주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10년, 50년, 100년 뒤에 들어도 여전히 감동을 주고 감탄을 자아내는 해석이 존재한다. 그 이유도 시간의 흐름에 변하지 않는 음악적 DNA가 그 연주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가족이 함께 자연과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할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나도 큰 창문이 있는 방을 작업실로 꾸몄다. 창 밖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슈트라우스의 집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자연과 음악의 비밀을 찾고자 애쓴다.
조선닷컴/ 첼리스트 장한나의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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