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 압천(京都 鴨川)
- 정 지 용
압천 십릿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임 보내기
목이 잠겼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어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어짜라 부숴라 시원치도 않아라
여뀌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부기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떴다
비 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렌지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마음
압천 십릿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 1924
# 詩 해설 :
정지용은 1923년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압천(鴨川)은 교토 전체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비예산(比睿山)과
동산(東山)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다.
압천 주변에는 철따라 꽃이 피고 철새가 날아오는가 하면 비가 오지 않을 때면
강바닥이 훤히 드러나 쓸쓸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으로 교토 서민들의 생활이
스며든 곳이기도 했다.
정지용은 이 압천 강가에 와서 거닐거나 무심히 앉아 “부질없이 돌팔매질하고
달도 보고 생각도 하고 학기 시험에 몰리어 노트를 들고 나와 누워서 보기도”
했는데, 특히 봄 가을 비오는 날 거니는 정취란 각별했던 것 같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부한 정서를 안겨 주는 압천이기에 정지용은
그곳에서 자신의 시상(詩想)과 사상(思想)을 가다듬었던 듯싶다.
그는 교토 생활을 소재로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압천 십릿벌에/해는 저물어…저물어…//날이 날마다 님보내기/목이 자졌다…
여울물 소리…”로 시작되는「경도압천(京都鴨川)」이라는 시를 보면,
압천은 정지용에게 평안과 휴식만을 준 것이 아니라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일깨우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먼 이국에서 느끼는 고독과 향수를 압천 유역의 전원적인 자연풍경으로
달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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