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수필 산책

금아 / 인연

이예경 2009. 7. 14. 10:47

수필 '인연'

 

 이 작품은 아름답고 안타깝고 지나칠만큼 깔끔한 글이다.

73년 수필문학을 통해 발표된 이글은 이야기 전개가 하도 치밀하게 구성되어 도리어 부자연스러울 정도이다.

도입부분은 성심여대의 출강, 본문은 지난날의 회상, 결어는 만남과 인연을 생각하는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데

회상부분에는 아사꼬를 만나고 헤어진 20년의 세월이 정교하게 축약되어 있다.


첫 번 헤어질 때 아사꼬는 지은이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췄고,

두 번째는 가벼운 악수를 했고, 세 번째는 악수도 없이 절만 몇번씩한다.

서로의 몸이 닿는 면적이 자꾸 줄어드는 만큼 친밀감도 조금씩 줄어든다.

 

처음 만났을 때 아사꼬는 스위트 피이 같이 어리고 귀여웠고

두 번째는 목련꽃 같이 청순하고 세련되었으며

세 번째는  시드는 백합같이 초라해져 있었다.

세 번 모두 아사꼬는 꽃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어릴 적 아사꼬는 학교에서 햐얀 운동화를 보여주었고

여대생 아사꼬는 학교에서 연두색 우산을 가지고 나온다.

 

<셀브르의 우산>이란 영화를 봐도 아사꼬를 연상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란 소설에서도 아사꼬를 연상한다.

하양과 연두, 영화와 소설, 지은이는 구태여 의식하지 않았을지라도 <인연>은 이렇듯 치밀한 짜임새를 획득한 수필이다.

 

또 그의 대표작에 하나인 '수필'은 수필의 특징을 함축적 비유를 통해 나타낸 <수필로 쓴 수필론>이다.

첫머리에 나오는 세련된 은유는 단 몇마디 말 속에 수필의 온갖 특질들을 집대성해 놓은 우리 수필사의 최고의 명구이다.

강렬하고 두드러진 것이 아니라 여유있고 조용하고 우아한 것이

수필이라는 금아의 정의는 문학이 탈장르를 지향하는 이 시대에 수필을 지나치게 한정지운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정통 수필이 나아가야 할 목표만은 뚜렷이 제시한다.


이 글은 전부 아홉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수필의 개념과 수필의 속성, 서술방식, 다른 장르와의 구분 소재, 수필이 가지는 파격의 멋,

마음의 여백을 가지지 못하는 작가 자신의 안타까움들이 단락별로 드러나 있다.
<누에의 입에서 고치가 나오듯이>특별한 사전 구성없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글이 수필이며

<차를 마시는 것 같이>담담하면서 깊은 향기를 지니는 글이 바로 수필이라고 금아는 묘사한다.


번쩍거리지 않은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 수필이고

청자연적의 연꽃 잎이 단 하나만 약간 옆으로 꼬부라진 것이 수필이라는 말은

담담하되 개성과 파격을 가져야 글이 지루하지 않다는 의미로 읽히는 절묘한 비유이다.


딱딱한 설명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의 글을

이렇듯 온아 우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금아 수필의 특징이고

자신이 말한 수필론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것도 바로 그 자신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쓰지 못하고 초조하게 번잡하게 살고 있다는 결미의 탄식은

도리어 수필에 대한 사랑과 결벽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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