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시부상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다녀왔다.
친구 남편은 내남편의1년후배이고 남편과 이십여년 같은회사에 재직했다
스위스지부에 2년간 교육받으러갔을때 내내 함께 했고
스위스지부에 2년간 교육받으러갔을때 내내 함께 했고
더구나 바둑실력이 쟁쟁해서 툭하면 맞대결하며 우의를 다져왔다
10년전에 돌아가신 친구의시모님은 나의고등학교 동문이며
10년전에 돌아가신 친구의시모님은 나의고등학교 동문이며
27년 선배님이시고 친구의 시누이는 나의후배이다
그리고 그시누이를 내가 중매하여 시집보냈는데
신랑이 남편의 대학후배이고 남편이연구소장였을때 연구소에서 부하직원이었다.
고인께서 써주신 서예작품을 우리는 소장하고있다.
고인께서 써주신 서예작품을 우리는 소장하고있다.
남편이 97년에 퇴직후 개인사업을 시작했을때 개업선물로 받아
15년간 사무실에 걸어놓았던것을 요즘엔 거실 한쪽에 걸어두고 본다
고인께서는 97세영면
2년전까지도 약수터 다녀오시고 붓글씨를 쓰시며 취미생활을 즐기셨다는데
고인께서는 97세영면
2년전까지도 약수터 다녀오시고 붓글씨를 쓰시며 취미생활을 즐기셨다는데
며느리가 백혈병으로 투병중이라 아들이 힘드니 딸네가셔서 당분간 계시던중
노환으로 요양원계시다가 돌아가신것이다
음식을 삼키지못하여 콧줄달고 식사하신지 2개월되었다면서
음식을 삼키지못하여 콧줄달고 식사하신지 2개월되었다면서
끝판에 콧줄로 식물같이 고생하다 가신것을 유가족들은 아쉬워했다
콧줄하셔도 후회 콧줄안하시고 못잡숫다가 가셔도 후회...
콧줄하셔도 후회 콧줄안하시고 못잡숫다가 가셔도 후회...
끝이 안좋을 수밖에 없는 노환은 자손들이 어떻게하든 다 후회하게 되는것...
어쩔수없는 이별 때문일것이다
집에서 노환으로 와병중에 돌아가시던 옛날과 달리 요즘엔 대부분 병원에서 돌아가신다.
집에서 노환으로 와병중에 돌아가시던 옛날과 달리 요즘엔 대부분 병원에서 돌아가신다.
그러다보니 자연사하기보다는 어쩔수없이 병원에서 권하는대로 과잉진료를 받아 필요이상의 고생을 하신다
그래서 웰다잉교육 받은 중년층들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도하지만
그래서 웰다잉교육 받은 중년층들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도하지만
대부분은 자손들이 의견분분하다가 결국 의사의 말을 따라하게되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미리 장기기증을 약속했다는 장례식장에도 가보았지만
미리 장기기증을 약속했다는 장례식장에도 가보았지만
뜻이좋기는한데 분해된 시신이떠올라 썩 편하게 느껴지지않았다
하여튼 죽기전까지 남다른 결심이 필요한것같다
하여튼 죽기전까지 남다른 결심이 필요한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