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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 시집보내기

이예경 2008. 10. 28. 23:25

요즘 들어 부쩍 중매를 서 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처녀나 총각이나 결혼후보자 나이는 모두 삼십대이다. 내가 결혼할 때만해도 삼십대 노처녀가 드물었는데, 요즘 주위에서 사십을 바라보는 처녀총각이 심심찮게 보이니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당사자의 부모들은 숙제를 못한 기분이라며 입학시험에라도 떨어진 듯 한숨을 쉰다. 혼기를 놓친 자녀에게 이제는 조건도 안 따지겠으니 누구라도 데려와 보라고 하고 아니면 노처녀를 누가 보쌈이라도 해갔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자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태평스럽기만 하다. 직장생활 적응이 발등의 불이지 결혼은 바쁠 이유가 없다며 결혼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 난을 몇 그루 키우고 있다. 처음 올 때는 연분홍의 꽃망울이 주렁주렁 달린 화려한 자태로 기쁨을 주었다. 이제 꽃은 졌지만, 때 맞춰 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고 햇빛을 따라 옮겨주면서 키우고 있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새순이 많이 올라와 몰라보게 무성해졌는데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 몇 해가 지나서야 때가 지난 것 아닐까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원에 물어보니 너무 잘 해줘서 그렇다며 꽃을 보려면 초겨울에 열흘이상 물도 주지 말고 밖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까 염려되고 애처로워서 나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 집안에 정신없이 바쁜 일이 생겨 한동안 화초들을 잊었다. 어느 날 집안에 들어서자 낯선 향내가 나도 비누향기려니 했다. 며칠이 지나도 계속 향기가 나서 마음먹고 잘 찾아보았더니 난이 눈에도 안 띠는 연두색 꽃을 피운 것이 아닌가. 겨우내 목마른 난이 일제히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춥고. 목마르고 고통스러워야 난이 종족보존의식이 살아나 죽을힘을 다해서 꽃을 피우는 거라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나날이 벌어지는 꽃망울이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꽃을 기다리며 날씨 따라 베란다로 안방으로 자리를 옮겨주고 비료를 주며 정성으로 키웠던 시절에는 나를 우습게보았던 것이었나. 문득 집집이 많다는 노처녀 노총각들 생각이 났다. 그들에게도 잘해주기만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나온다. 화초에게 물과 따스한 기온을 줄이듯 자녀에게도 베풀던 혜택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부모그늘에서 편안하게 살게만 하지 말고 자립하도록 내두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금쪽같이 귀한 자식에게 그렇게 야박스럽게는 못하겠다고 한다. 자녀들 역시 생활을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아늑한 자유를 누리는 그들이 구태여 그 생활을 버리고 결혼해서 살림을 해가며 아이를 낳고 키우며 생활전선에 맞부딪쳐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겁나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꽃을 가꿀 생각들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월은 잘 가고 노처녀 노총각이 나날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한편 생각해보면 60세를 넘기기 힘들던 시대에 20세가 결혼적령기였으니 평균수명이 늘어나 90세를 넘기는 노인이 많은 지금시대에는 30세가 넘어야 결혼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르겠다. 환경이 좋아지면 인생 진도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인가.

중매를 잘 서면 술이 석 잔이요, 세 번 중매를 서면 천당은 맡아놓은 거라는 데, 세 번째 일이 쉽지 않다. 서두른다고 진행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부탁 받은 처녀 총각들의 신상명세서를 들쳐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