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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식의와 심의

이예경 2008. 10. 28. 23:24

효(孝)- 심의(心醫)와 식의(食醫),

 

이 예경

 

"내가 무슨 낙(樂)이 있겠니 식사시간이 제일 즐겁지" 83세 어머님은 일곱 개 남은 치아로 다진 반찬들을 죽과 함께 오물오물 잡수신다. 열심히 잡수시는 모습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중풍, 당뇨, 고지혈증으로 입원하셨던 어머님은 쓰러진 지 여러 개월 만에 내 집으로 오셨다. 입원 당시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숟가락도 잡으시고 용변도 해결하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의학서적을 찾아보고 이웃의 체험담도 참고하면서 식사준비에 신경을 썼다. 주의할 음식이 많기도 하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 육체라면 기운을 담는 그릇이 피며 음식이야말로 최상의 기공이라 하더니, 나날이 회복에 차도를 보이신다. 이젠 의자에서 일어나실 수도 있고 혈압, 당뇨 수치도 계속 정상이다. 가족들은 모두 숨을 돌렸다.

그런데 한 달 후 틀니를 끼워 드리자 음식이 모두 꿀맛이라며 계속 잡수신다. 당신 병에는 절제 있는 식사와 운동이 살길이라 하면서도 식사 때마다 매번 더 달라고 하신다. 그러다가 수치를 재보면 당은 280(정상 140)까지 올라가고 어머님은 몸이 무거워졌다고 한숨을 내쉰다. 하루 운동이라 해야 거실 서른 바퀴 돌기,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 삼십 번 정도인데 매번 중간에 쉬러 들어가신다.

현재 어머님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드시니 고만 잡수라고 말리는 일도 잠깐 뿐이다. 며느리인 나는 어머니의 입맛을 맞춰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지, 절제 있는 건강관리로 몸을 회복시키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할 지, 식사 때마다 매번 갈등에 빠진다.

그런데 남편은 아들로써 갈등이 없다. 오로지 어머님 몸 회복을 위해서 매사에 주의를 준다. "어머니, 오늘은 운동을 얼마큼 하셨어요. 좀 부족하게 하셨으니 지금 제가 보는 데서 거실 열 바퀴 더 도세요. 진지는 한 공기만 드시고 육식도 줄이세요. 야채를 많이 드시고 소스양념은 고만 드세요…" 매번 말씀드려 보지만 어머니는 거의 따르지 않으시니 어머니와 아들의 실랑이는 계속된다. 두 모자의 속마음을 아는 나는 옆에 서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평생 질병에 시달리던 세조(世朝)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의약론"에서 명의를 이르기를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병을 낫게 하는 심의(心醫), 음식 조절로 병을 고치는 식의(食醫), 그리고 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가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은 심의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서 어머님이 과식(過食)을 즐겨 하니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결과로 건강이 나빠진다면 정답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노인들 대부분은 절제하면서 재미없게 오래 살아봐야 뭐하겠느냐 한다. 좋은 세월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이제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 한다. 노인이 노인마음을 잘 알 터이고, 어차피 어머님은 옆에서 누가 뭐라던 듣지 않으니 다른 방법도 없지만, 자손 된 입장에선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도 어머님은 과식을 하셨고 운동은 거의 안 하셨다. 그리고는 몸이 계속 무겁다고 하면서, 당신 건강이 왜 이리 안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뱉는다. 내 마음도 덩달아 무겁다. 이럴 때는 어머니를 아기 달래 듯하며 팔을 부축하여 걷는 운동을 해본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의(心醫)였다가 식의(食醫)였다가 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효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