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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소리

이예경 2008. 10. 28. 23:23

뻐꾹 소리

내가 뻐꾸기를 처음 본 것은 60년대에 큰길 버스정류장 앞의 시계방에서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눈이 멈춘 쇼윈도 속에서 신기하게도 벽시계 이마에 붙어있는 새 둥지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뻐꾸기가 튀어나와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열두 번이나 뻐꾹뻐꾹 소리를 냈던 것이다. 버스정류장의 극심한 소음을 능가하는 그 자연의 소리는, 도시생활 밖에 모르던 내게 순식간에 깊은 숲에 둘러싸인 것 같은 평안함을 주었다.

결혼하여 처음 장만한 것이 그 뻐꾹시계였다. 그 후 산자락으로 이사 온지 이십 년이 넘었다. 요즘 동네 뒷산은 그 화려했던 봄의 꽃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나날이 신록으로 채워져 산의 향기도 달라졌다. 등산로 초입부터 좔좔 흘러내리는 시내를 건널 때는 속세에서 다른 세계의 문턱을 넘는 느낌이다. 이름 모를 산새들은 자기들이 주인인양 멀리서도 지저귐으로 손님을 반겨준다. 귀에 들리는 대로 이런저런 새들의 소리를 흉내 내면서 걸어가면 나도 새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마냥 즐겁다.

그 중에서도 뻐꾸기소리가 들리면 내 심장이 콩당콩당 뛰고 마음이 온통 새한테 쏠린다. 친구랑 나누던 대화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심호흡을 해서 목청을 가다듬고 뻐꾸기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메아리같이 뻐꾹 뻐꾹 소리를 내보는데, 새는 세 번, 또는 두 번씩, 그러다가 다섯 번씩 반복하며 노래 소리를 바꾸지만 나 역시 질세라 똑 같은 메아리를 보낸다. 그렇게 한참을 뻐꾹거리며 갔는데 갑자기 건너 산에서 들리던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흥겨워진 내가 새소리 흉내를 멈추지 못하자 앞서가던 친구는 내게 뻐꾸기도 떠났는데 고만 좀 할 수 없겠느냐 한다. 좀 시끄럽기도 했고 말없이 혼자 가기도 심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중턱에 다다르니 뻐꾹새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곧 응답을 했다. 그런데 소리가 제법 가깝게 다가온 듯하다. 새는 리듬을 잃지 않고 내 소리에 화답하고 있다. 내가 장난기가 동하여 소리를 두 번씩 내다가 다섯 번으로 바꾸니 자기도 나를 따라 다섯 번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시 바꾸면 또 따라 한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잘 통하는 새는 처음 본다. 이제는 누가 메아리인지 모르겠다. 우연이라면 참 재미있는 우연이라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또 쿵쿵 뛰었다.

가파른 산길도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꼭대기까지 거의 올라왔다. 그런데 새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린다고 느낀 순간, “푸드득” 소리가 나면서 내 머리 바로 위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눈앞에 산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나는 갑자기 현기증이 나도록 놀랬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내가 못할 짓을 한 거구나. 그 뻐꾸기는 짝을 찾아 먼 산으로부터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호흡을 맞추면서 찾아왔던 것인데 나뭇가지에 숨어 상대를 훔쳐보고는 기절초풍이었던 것이다. 날개가 있나 부리가 있나 다리는 굵고 아무짝에도 쓸데없이 덩치만 큰 괴물이 뻐꾸기 소리만 잘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놈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뭔가 통했다는 생각, 비록 퇴짜를 맞기는 했지만 산새가 내 소리를 듣고 찾아왔던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내가 그 청아한 소리에 흠뻑 빠져서 따라다닌 것을 새도 알고 있었구나.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진심의 소리는 새에게도 교감이 되는 가 보다.

그런데, 새와 대화할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 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적이 많았을까 모르겠다.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는 서글퍼진다.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내 속을 드러내기 전에 상대방의 생각부터 알려고 탐색하면서 대화를 했기 때문일까. 함부로 진심을 내보이기가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차라리 애완동물과 더 잘 통한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산새 소리는 산에 들어서는 나를 반겨주고 뻐꾸기의 더없이 아름다운 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온다. 세파에 시달리며 사는 군상들에게 그 소리는 여전히 위안이 된다. 뻐꾸기 덕에 나는 자신감이 좀 생긴 것 같다. 친구가 뭐라 해도 나는 또 평소 실력으로 “뻐-꾹, 뻐-꾹” 따라 하면서 산새를 친구로 느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