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시 산책

거짓말 - 공광규

이예경 2016. 8. 4. 00:12

거짓말 - 공광규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공광규·시인, 1960-)